홈 > 디렉토리 분류

1855년 김성첨(金聖瞻)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E.1855.4717-20150630.y1510010129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김문백이, 박수백이, 김성첨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55
형태사항 크기: 29 X 33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855년 김성첨(金聖瞻)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5년(함풍 5) 12월 9일, 김문백이가 김성첨에게 토지를 매도하며 발급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그런데 이 명문에서는 이 거래가 이루어진 때의 연호를 함풍 3년, 간지를 을묘년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함풍 3년의 간지는 계축년이기에 당시의 생활관습을 고려하여 간지를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함풍 5년이 되는 1855년 12월 9일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사유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논으로 박곡원에 있는 집자 자호의 52지번의 논 1부 7속 1두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22냥으로, 이 돈을 받고 본문기(=구문기)는 다른 밭의 주인에게 함께 붙어 가서 신문기 1장을 발부하여 보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자손들 중에 혹시라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김문백이와 증인이자 필집인 박수백이의 이름과 수결이 있다. 이 문서는 거래되는 토지의 정보를 밝히는 통상적인 순서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토지매매명문의 전형에 가깝다. 그리고 이 매매에서 거래된 토지의 소재지인 박곡원은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으로 전주유씨의 동성마을인 수곡리와 인접해 있고, 이 문서의 거래자들을 볼 때 이 문서는 삼산종가에서 이 토지를 매입할 때 함께 넘겨받은 구문기 중의 1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6‧17세기 奴婢의 田畓 所有와 賣買 實態」『朝鮮史硏究』 제9집, 이재수, 조선사연구회, 2000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55년(咸豊 5) 12월 9일, 金文白伊가 金聖瞻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1855년(咸豊 5) 12월 9일, 金文白伊가 金聖瞻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咸豊 3년이고, 干支가 乙卯年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咸豊 3년의 干支는 癸丑年이고, 干支가 乙卯年인 때의 年號는 咸豊 5년이다. 이렇게 年號와 干支가 다를 때는 干支를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 당시에는 일상생활에서 干支로 연도를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咸豊 5년이 되는 1855년 12월 9일이다. 그리고 買收者는 金聖瞻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논으로 朴谷員에 있는 集字 字號의 52地番의 논 1負 7束 1斗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22兩으로, 이 돈을 받고 本文記(=舊文記)는 다른 밭의 주인에게 함께 붙어 가서 新文記 1장을 보내어 발부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자손들 중에 혹시라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金文白伊와 證人이자 筆執인 朴守白伊의 이름과 手決이 있다. 이 문서는 거레되는 토지의 정보를 밝히는 순서, 즉 통상 所在地-字號-地番-收穫量-面積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이 所在地-字號-面積-地番-收穫量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토지매매명문의 전형에 가깝다. 그리고 이 매매에서 거래된 토지의 소재지인 朴谷員은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이다. 이곳은 全州柳氏의 동성마을인 수곡리와 인접해 있고, 이 문서의 소장처가 全州柳氏 三山宗家인 것을 생각하면, 이 문서는 三山宗家에서 이 토지를 매입할 때 함께 넘겨받은 舊文記 중의 1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서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논의 주인, 그리고 證人과 筆執으로 참여한 사람의 이름이다. 이들의 이름이 姓氏를 포함해 4字인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그리고 문서에는 이들의 姓과 이름 사이가 띄어져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볼 때 이들은 그들의 주인인 金氏와 朴氏를 대신하여 이 거래에 참여한 奴婢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먼저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과 그 변동 상황 등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이나 매매 방식, 또는 문서의 형식 등을 알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6‧17세기 奴婢의 田畓 所有와 賣買 實態」『朝鮮史硏究』 제9집, 이재수, 조선사연구회, 2000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咸豊三年乙卯十二月九日金聖瞻前明文
右明文事段矣幷要用所致傳來
朴谷員集字壹斗落只杇貳畓壹負柒束
庫乙價折錢文貳拾貳兩依數捧
上是遣本文記他田主竝付故新文記一
丈爲去乎日後子孫中或有雜談是
去等持文記卞正事
畓主金文白伊[署押]
證筆朴守白伊[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