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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박준근(朴俊根)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E.1839.4717-20150630.y151001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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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김학흥, 김백이, 박준근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9
형태사항 크기: 35 X 32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839년 박준근(朴俊根)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9년(도광 19) 10월 17일, 김학흥박준근에게 토지를 매도하며 발급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사유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논으로 박곡원에 있는 집자 자호의 12지번의 논 하변 1두락 2부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20냥으로, 이 돈을 받고 본문기(=구문기)는 다른 문기 아래에 붙어 있어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보내어 박준근에게 영원히 방매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만약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김학응과 증인인 김백이의 이름과 수결이 있고, 필집으로 참여한 사람은 수결과 박씨라는 성만을 기재하였다. 이 매매에서 거래된 토지의 소재지인 박곡원은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이며, 이 문서는 그 소장처인 전주유씨 삼산종가가 이 토지를 매입할 때 넘겨받은 구문기이다. 이 토지의 구문기 가운데 11년 뒤에 매매한 명문[1850년 김응수(金應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을 보면, 이 문서의 매매가보다 50%나 상승한 30냥으로 되어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39년(道光 19) 10월 17일, 金學興이 朴俊根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1839년(道光 19) 10월 17일, 金學興朴俊根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道光 19년이고, 干支가 己亥年이 되는 1839년 10월 17일이며, 買收者는 朴俊根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논으로 朴谷員에 있는 集字 字號의 12地番의 논 하변 1斗落 2負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20兩으로, 이 돈을 받고 本文記(=舊文記)는 다른 文記 아래에 붙어 있어 주지 못하고 新文記 1장을 보내어 박준근에게 영원히 放賣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만약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金學興와 증인인 金伯伊의 이름과 手決이 있고, 筆執으로 참여한 사람은 手決과 朴氏라는 姓만을 기재하였다. 이 문서는 토지매매명문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당시 관습적으로 토지매매명문에 기재되어야 할 거의 모든 사항들을 빠짐없이 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매매에서 거래된 토지의 所在地인 朴谷員은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이다. 이곳은 全州柳氏의 동성마을인 수곡리와 인접해 있고, 이 문서의 소장처가 全州柳氏 三山宗家인 것을 생각하면, 이 문서는 나중에 三山宗家에서 이 토지를 매입할 때 함께 넘겨받은 舊文記 중의 1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三山宗家에서 이렇게 넘겨받은 舊文記에는 이 토지를 11년 뒤에 매매한 명문[1850년 김응수(金應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있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점은 賣買價이다. 다시 말해서 이 문서에는 賣買價가 20兩으로 되어 있는데, 1850년의 명문에는 30兩으로 되어 있다. 이를 보면 10년 남짓한 사이에 토지의 가격이 50%나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먼저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과 그 변동 상황 등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이나 매매 방식, 또는 문서의 형식 등을 알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道光十九年己亥十月十七日朴俊根前明文
右明文爲臥事段有要用處傳來畓朴谷員
集字十二畓下邊壹斗落只二負庫乙價
折錢文貳拾兩是遣本文記段有下作幷付
故以新文記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
後若有雜談是去等持此文告 官
卞正事
畓主 金學興[署押]
證人 金伯伊[署押]
筆 朴[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