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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말생(唜生)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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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말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23 X 49.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신축년(辛丑年) 말생(唜生)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신축년 12월 27일, 신씨의 노비인 말생이 토지를 매도하며 발급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사유는 돈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서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땅으로 삼산원에 있는 개자 자호의 98지번의 밭 13부 2속과 99지번의 밭 17부 1속, 집자 자호의 77지번의 논 2부 3속, 그리고 집자 자호의 78지번의 논 3부와 79지번의 논 2부 7속 도합 3경작지에 9두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830냥으로, 이 돈을 받고 구문기와 함께 영원히 방매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밝히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주는 논의 주인으로 신씨의 노비인 말생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증인은 그 글자만 있고 사람의 이름은 없다. 그런데 이 문서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매매가 이루어진 연도에 대한 표시를 할 때 연호를 쓰는 자리에 ‘세(歲)’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왕조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이 희박해졌기 때문에 굳이 연도의 표시에 연호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매는 다른 것에 비해 서너 배나 되는 거래인데, 아마도 당시에 삼산종가 주변에 대규모의 토지매물이 나왔고, 이를 삼산종가에서 매입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辛丑年 12월 27일, 申氏의 노비 唜生이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辛丑年 12월 27일, 申氏의 노비인 唜生가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辛丑年 12월 27일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땅으로 三山員에 있는 蓋字 字號의 98地番의 밭 13負 2束과 99地番의 밭 17負 1束, 集字 字號의 77地番의 논 2負 3束, 그리고 集字 字號의 78地番의 논 3負와 79地番의 논 2負 7束 도합 3耕作地에 9斗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830兩으로, 이 돈을 받고 舊文記와 함께 영원히 放賣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밝히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주는 논의 주인으로 申氏의 노비인 唜生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證人은 그 글자만 있고 사람의 이름은 없다. 그런데 이 문서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매매가 이루어진 年度에 대한 표시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나 중국의 年號를 먼저 쓰고 다음에 干支를 쓴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年號를 쓰는 자리에 ‘歲’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만약 年號를 이렇게 쓰면 매매가 언제 이루어졌는지 정확한 年度를 알 수 없다. 당시에는 年號가 곧 年度의 흐름을 나타내주는 기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明文에서는 연도를 왜 이렇게 표시했는지 그 정확한 연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연유를 짐작해 보면, 그것은 年號에 대한 의식이 점차 옅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王朝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이 희박해졌기 때문에 굳이 年度의 표시에 年號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明文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거래의 규모가 아주 크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 갑자기 地價가 올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830兩이라는 賣買價는 거래액이 큰 경우와 비교해도 서너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문서가 三山宗家에서 소장하고 있었고, 그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가 三山員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생각해보면, 당시에 三山宗家 주변에 대규모의 토지매물이 나왔고, 이를 三山宗家에서 매입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당시 三山宗家의 財力이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명문에서 주목할 것은 땅의 주인으로서 申氏의 노비인 唜生가 賣渡者로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唜生가 실제적인 땅의 주인이 아니라 그의 주인인 申氏를 대신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노비가 주인을 대신하여 땅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일이 흔하였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먼저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과 그 변동 상황이나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문서에서와 같이 대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진 경우, 그 변동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歲辛丑十二月念七日 前
明文
右明文事段 以要用所致 傳來畓
山員蓋字九十八田十三卜二束 九十九田
十七卜一束果 集字七十七畓二卜三束果
又集字七十八畓三卜 七十九畓二卜七束
三作合九斗落只庫乙 價折錢文
捌伯參拾兩 依數捧用是遣 旧
文記幷右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以此
文記憑正事
畓主 申 奴唜生
證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