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邦植이 밭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리며 公所에 발급해준 標文
내용 및 특징
柳邦植가 자신의 밭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리며 公所에 발급해준 標文이다.
일반적으로 標文은 돈이나 물건 따위를 貸借나 寄託, 또는 約束할 때에 이를 증명해주는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일정한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狀況과 經緯, 그리고 앞으로의 計劃이나 對策 등을 서술하는 것을 그 양식으로 한다.
이 표문은 돈의 貸借와 관련된 문서이다. 그래서 그 서두는 돈을 빌리게 된 事由를 기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에 따르면 더할 수 없는 침범을 당하여 이미 집안 내에서부터 미리 쓸 수 있도록 처리해주라는 의논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柳邦植 스스로 기근을 구제할 計策으로 東橋에 있는 밭 1斗落을 담보로 하여 25兩을 빌리기로 하고, 10兩을 먼저 빌려서 쓴다고 하였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본전을 받을 때 이 표문을 증거로 하라는 말로 이 문서가 돈을 빌린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표문을 쓴 주체, 즉 돈을 빌린 사람인 柳邦植의 이름과 手決이 있다. 또한 그 밑에는 "이 가운데 10兩을 6월 14일에 꾸어다 썼다."라는 말이 附記되어 있다.
이 표문의 내용을 보면 柳邦植의 처지가 水害와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를 만나 끼니를 이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 보니 一家의 사람들이 돈을 빌려주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의론이 있었다. 이 문서의 所藏處가 全州柳氏 三山宗家이고, 標文을 발급한 사람 또한 柳氏인 것을 보면, 全州柳氏들이 相互扶助를 목적으로 설립한 公所에서 돈을 빌려주자는 의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柳邦植는 자신의 토지를 담보로 제공하여 25兩을 빌리기로 하고, 먼저 10兩냥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처럼 돈을 빌려 쓰고 곧 갚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타 문서들과 다르게 이 표문에는 年度나 날짜에 대한 기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표문으로 볼 때 全州柳氏들이 설립한 公所는 一家 중의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곳으로 지금의 경우에서 보면 全州柳氏들의 相互信用金庫에 해당한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표문에 利子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無利子로 돈을 꾸어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담보물에 대해서도 그 所在地와 字號만을 기재하고 地番을 기입하지 않은 것은 서로 一族이기에 믿고 거래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표문의 뒷면에 몇 사람의 이름과 兩 아래의 단위인 錢과 卜의 돈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10兩을 柳邦植가 혼자서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쓴 것으로 짐작이 된다.
자료적 가치
표문은 다른 문서들에 비교해서 희귀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따라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의 분야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이 표문과 같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16세기 한국 고문서 연구』, 이수건 외, 아카넷, 2004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