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10일, 屛山書院에서 行悖를 부린 宣城李氏의 處理方案을 위한 會合의 개최를 玉山書院에 알리는 洛濱壇所의 通文
[내용 및 특징]
1920년 4월 10일 洛濱壇所에서 玉山書院로 보낸 通文으로 그 내용은 屛山書院에서 行悖를 부린 宣城李氏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會合을 가진다는 것이다. 낙빈단소에서 이러한 통문을 보내게 되기까지의 사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통문은 먼저 병산서원이 원래 우리나라의 학문을 대표하는 곳이며, 儒林이 300년 동안 모범으로 삼아 돌아가 의지할 곳으로 여긴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병산서원이 유림을 대표하는 書院 중의 하나로 그곳의 일이 곧 유림 전체의 일과 다르지 않으며, 병산서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낙빈단소에서 이러한 통문을 발행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곳에서 불행히도 豊山에 거주하는 선성이씨라는 사람의 행패로 인해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곳에서 당한 禍를 병산서원에 와서 분풀이로 소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祭祀에 香을 피워 올리는 副任에게 매질을 하여 쫓아내고, 큰 제사를 받드는 首席 任司에게 경우에도 없는 것으로 욕하고 꾸짖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제사에 祭物을 올리지도 못하고, 祠堂의 자물쇠가 부셔져 향을 피우고 참배하는 예절이 열흘 동안 그만두어야 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선성이씨의 本孫이 책임을 지고 직책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하지만 본손은 그 일에 대해 변명도 하지 않고, 논의하는 일을 방관하며 일을 바로잡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낙빈단소는 서원에서 일어난 一時的인 危機일 뿐만 아니라, 斯文에 전에 없던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들은 멀리 있으면서 비록 이 소식을 늦게 들었지만, 슬프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빠른 시일 안에 이 일을 수습하자는 뜻에서 이렇게 여럿이 함께 글을 써서 통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회합은 4월 22일 병산서원에서 개최될 것이니 여러분이 모두 왕림하여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서 오직 여론에 따라 병산서원의 일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면 참으로 고맙겠다는 말로 통문의 끝을 맺었다.
이 통문은 사건의 槪要만을 기술하고 있어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보다 깊은 내막은 알 수 없고, 단지 한 무례한 사람이 서원에 난입하여 소란을 피운 일이라는 정도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통문에서 주어진 사실들을 가지고 다각도로 추측을 해본다면 이 통문이 발행된 1920년대의 서원 내지는 유림의 情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이 사건을 풍산에 班村을 형성하는 유력한 집안의 후손인 선성이씨가 당시 병산서원의 책임자가 一族의 사람인 것을 믿고 저지른 방자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鄕村에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가문의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사림이 설립한 교육기관이자 자치운영기구인 서원에서 부임을 매질하여 쫓아내고, 수석 임사에게 욕하고 꾸짖는 것과 같은 일은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 통문에서 이 사건을 서원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위기일 뿐만 아니라, 사문에 전에 없던 충격적인 일이라고 한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서원이 과거와 같은 힘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사건의 발생 앞에 유림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선성이씨와 같은 행동은 무식한 평민들이나 저지르는 무례한 일이라고 유림은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班家의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고, 그것도 학문을 하고 선조를 배향하는 서원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것이었다. 만약 이러한 사건을 방치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서원과 유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 자명하였다. 따라서 어떻게든 이 사건을 수습하지 않으면 서원과 유림이 과거의 영광은 고사하고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여겨졌을 것이다. 낙빈단소가 빠른 시일 안에 이 일을 수습하자는 뜻에서 이 통문을 발행했다고 한 것은 유림의 바로 이러한 위기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 통문은 한편으로는 도덕적 解弛로 조직의 권위와 결속력이 무너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무너지는 권위와 결속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하는 1920년대의 유림과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이 통문은 외형적으로는 한 無賴漢이 書院에서 行悖를 부린 사건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통문이 발행된 裏面을 보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과거의 권위와 결속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안타까운 노력을 하는 1920년대 서원과 유림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