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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駿奔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G.1895.4725-20180630.Y185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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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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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시도기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심원록
작성주체 옥동서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작성시기 1895
형태사항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7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안내정보

1859년(철종 10)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駿奔錄
자료의 내용
본 駿奔錄에 수록된 65명의 현황을 살펴보면 기미년 3월 大享時 26명, 9월 大享時 20명, 무인년 3월 大享時 19명이 세 차례에 걸쳐 이루진 향사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제례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성씨별 구성을 살펴보면, 黃氏 44명, 姜氏 6명, 金氏 5명, 呂氏 4명, 李씨 2명, 盧·柳·全·趙씨 각 1명씩이며, 18세기 이후 옥동서원을 운영을 담당했던 장수황씨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8개의 성씨가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17세기 이후 서원의 성격이 문중서원화 되어 가던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런 문중화는 곧 지역사림의 서원 참여율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당시 상주 재지사족에 의해 운영되었던 향촌기구의 하나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반영된 것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의례 역주2,향음주례 향사례』, 박례경 외, 세창출판사,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59년(철종 10)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駿奔錄
자료의 내용
본 駿奔錄은 옥동서원에서 거행된 告由祭와 秋享祀 당시 제례에 참석하였던 인사 및 獻官執事를 기록한 자료이다. 참석한 인원의 성명과 함께 제례 당시 역임하고 있었던 직임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본 자료는 옥동서원 소장 준분록 10책 가운데 하나로 기미년 즉 1859년(철종 10)에 작성된 문서로 겉표제에는 준분록으로 되어있고, 본 좌목에는 직임, 성명, 執事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해 두고 있다. 이 시기는 또한 현직 수령이 서원의 원장을 겸하기 시작하였다. 작성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근대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총 65명이 수록된 현황을 살펴보면 기미년 3월 大享時 26명, 9월 大享時 20명, 무인년 3월 大享時 19명이 세 차례에 걸쳐 이루진 향사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옥동서원의 향사는 일반적으로 음력 춘3월과 추9월 上丁日 사당인 景德祠에서 행하되, 만약 國忌日이 겹치게 되면, 中下末丁에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향사는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인 子時 末에 치러진다. 옥동서원 유사는 크게 享有司와 別有司가 있으며, 원장과 같은 방식으로 임명된다. 향유사는 향사를 치르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향사 때의 제 집사를 奉請 할 수가 있다. 반면, 별유사는 2명이 임명되는데 句官有司라고도 부른다. 별유사 2명은 각각 타성 1명, 본손 1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본손은 옥동서원 제향자인 황희의 후손, 즉 장수황씨 일족을 뜻한다. 별유사가 서원의 업무 일반을 총괄하며, 각종 재정 관련 사항의 실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향사 준비와 관련된 각종 업무와 제 집사의 선발은 이들 원장과 향유사·별유사 간의 유기적인 업무 분담과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새로 선임된 원장과 유사에게는 향사가 마친 보름 이내에 薦紙를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향사가 끝난 후 새로 선임된 원장과 유사는 각각 춘향을 앞두고는 정월 초닷새 날, 추향을 앞두고는 팔월 초하루 날 焚香을 한 뒤 봉청자의 추천과 향사 등과 같은 서원의 당면 현안 등을 논의한다. 옥동서원의 분향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이루어지며, 향유사 1명과 별유사 1명이 거행하는데, 초임 원장도 첫 분향시는 분향을 하는 것을 원칙이다. 제 집사의 봉청은 향유사가 행한다. 이때 추천된 제 집사에게도 천지를 발송하는데, 춘향은 음력 2월 초하루 날, 추향은 8월 초 하루날 발문하여 일주일 안에 송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외 아헌관과 종헌관은 원장과 유사 등과 협의 하여 천거한다. 한편, 祝과 찬자贊者는 사전에 잠정적으로 정하되, 일반 제관으로 봉청하며, 향사당일 분정하는 형식을 따른다. 이상 초헌관·아헌관·종헌관·축·집례에 대하여 옥동서원에서는 五執事라고 부른다. 본 준분록에는 집사분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옥동서원에서 향사 때 봉무할 제 집사에 대한 분정은 오후 5시에 이루어진다. 옥동서원의 강당인 蘊輝堂에는 목판으로 제작된 분정판이 걸려 있는데, 지난 향사 때의 헌관 이하 제 집사의 명단이 한지에 묵서되어 걸려 있다. 이것을 금번 향사의 것으로 교체하여 부착한 뒤, 다음 향사 때까지 게시해 둔다. 習儀, 制祝, 夜話, 封尊, 實饌과 陳設 등이 모두 준비되면 향사는 새벽 1시에 봉행하며 1시간 전 향사를 통고한다. 제관들은 세수를 한 뒤, 의관을 챙겨 입고 10분 전까지 준비를 완료한다. 향사는 옥동서원에 전해지고 있는 전통 홀기에 따라 거행하는데 獻幣禮 - 初獻禮 - 亞獻禮 - 終獻禮 - 飮福受胙 - 望燎禮 - 飮福禮 순으로 진행이 된다. 공식적으로 음복례가 끝나야지 모든 향사 제례가 끝나는 것이다. 모든 제관들은 강당에서 相揖禮를 행하고, 좌정한 뒤 음복을 시작한다. 음복 도중 금번 향사에 문제점 없었는지, 개선해야 될 것은 무엇인지 두루 의견을 묻는다. 음복례가 마치면 원장 이하 임원들이 모여 후임 원장 등을 추천한 후 罷座한다. 제례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성씨별 구성을 살펴보면, 黃氏 44명, 姜氏 6명, 金氏 5명, 呂氏 4명, 李씨 2명, 盧·柳·全·趙씨 각 1명씩이며, 18세기 이후 옥동서원을 운영을 담당했던 장수황씨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8개의 성씨가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17세기 이후 서원의 성격이 문중서원화 되어 가던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런 문중화는 곧 지역사림의 서원 참여율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당시 상주 재지사족에 의해 운영되었던 향촌기구의 하나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반영된 것이다. 반면 또 다른 배향자 전식의 후손 옥천전씨는 단 1명밖에 보이지 않아 그 차이가 확연하다. 사실 배향자 전식의 후손인 옥천전씨 가문은 서원 중건 때부터 참여가 저조하다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참여치 않고 있었다.
자료적 가치
『준분록』은 19세기 후반 옥동서원의 운영층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자료에 나타난 인물들은 대부분 황희 후손 장수황씨들이 서원의 운영에 깊이 관련하고 있었던 인사들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후기 옥동서원이가 가지고 있던 향촌사회내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옥동서원의 향사 집사분정의 양상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의례 역주2,향음주례 향사례』, 박례경 외, 세창출판사,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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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三月初七日
大享時
初獻黃奎鉉
亞獻呂思汲
終獻姜斗欽
黃鍵
執禮黃在直
掌饌黃在敎
黃鐸
黃在睦
黃馨周
黃炳善
黃揚老
李秉華
黃仁鉉
金鎭澤
黃在中
黃聖老
黃圭老
黃蘭善
黃最善
黃獻周
姜運永
諸生黃大鉉
呂思喆
黃廷老
黃在五
黃致老
九月初一日
大享時
初獻官金晉礪
亞獻官黃大鉉
終獻官姜斗欽
掌饌黃蘭善
金羲鏞
執禮李萬善
掌饌金瓚奎
黃永周
判陳設黃在鳳
黃憲周
姜元馨
奉香黃華善
烽爐黃遇周
執禮黃贊周
黃鍾善
呂錫九
姜鍾永
黃直老
黃蘭善
黃源孝
戊寅三月初七日大享時
初獻官黃摯鉉
亞獻官黃在五
終獻官全鳳九
呂錫夏
執禮柳祖馨
黃宗雨
黃直老
黃勉周
黃圭老
姜旭永
黃鉉老
黃在正
黃機
盧輿敬
金時洛
黃彛鉉
趙哲和
黃在軾
黃夏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