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4년(숙종 40)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焚香錄
자료적 가치
갑오년 옥동서원에서 거행된 朔望際를 주관한 인물들을 기록한 명단인 『분향록』이다. 본 문서를 비롯한 옥동서원 소장 분향록에 의하면 삭망제는 대체로 院長과 齋任, 儒生이 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는 구성원의 직임과 성명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로 黃氏의 주도로 향례가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옥동서원이 위치한 상주목 천하촌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장수황씨의 세거지로서 서원은 바로 이들 후손의 주도로 건립·운영되었는데 이는 서원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제향의식을 대부분 서원구성원들 특히 문중인 장수황씨에 의해 수행되는 사실이 나타나는 문서이다.
삭망분향은 주로 재임과 유생이 주관하고 있으며 단지 주관자의 성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본 문서의 정확한 작성연대는 첫 입록자인 齋任 黃沈의 출생연대가 1688년(숙종 14)이기 때문에 표제에 기재된 갑오년은 1714년(숙종 40)이다. 황침은 본관이 장수, 字 중회(仲晦), 숙종 45년(1719) 己亥 增廣試 생원 3등에 입격했고, 경종 1년(1721) 辛丑 증광시 을과 7위에 문과 급제하여 承文院正字를 역임하였다.
중복 포함하여 총 37명으로 원장은 보이지 않고 재임 6명, 나머지는 일반 유생들의 삭망분향시 주관자들이 입록되어 있다. 이를 성씨별로 분류하면 황씨 18명으로 압도적이며 趙氏 13명, 이씨 4명, 申 2명 순이다. 옥동서원에서의 삭망분향을 주관하는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중복적으로 기재된 것을 보이고 있는데, 중복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옥동서원의 운영 핵심가문인 장수황씨가 절대적이다. 성관의 분포로 미루어 옥동서원 이미 18세기 문중 중심으로 서원이 운영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후기 후손들이 사는 고을에 설립된 문중서원은 물론이고 大賢書院에서도 후손들이 원임에 취임하는 것은 흔히 목격되는 일이었다. 한편 1724년 9월 朔에는 國恤未行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경종이 승하했기 때문에 별도의 분향례를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의례 역주2,향음주례 향사례』, 박례경 외, 세창출판사,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