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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년(효종 1)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駿奔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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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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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시도기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심원록
작성주체 옥동서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작성시기 1650
형태사항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9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안내정보

1650년(효종 1)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駿奔錄
자료의 내용
본 駿奔錄은 옥동서원에서 거행된 執事分定錄의 명단을 기록한 자료이다. 총 58명이 수록된 현황을 살펴보면 경인년 봄 亭時 19명, 경인년 가을 享時 2명, 임자년 봄 14명, 계축년 봄 23명 네 차례에 걸쳐 이루진 향사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제례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성씨별 구성을 살펴보면, 黃氏 46명, 申氏 5명, 金氏 3명, 陸·朴·張氏·미상 각 1명씩이며, 옥동서원 배향자의 후손 장수황씨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 외 5개의 성씨가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장수황씨가 서원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또 다른 선조를 1783년(정조 7) 畜翁 黃孝獻과 槃澗 黃紐를 추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전식 배향 직후임에도 그의 후손인 옥천전씨는 단 1명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첫 입록자인 黃級은 찰방을 역익한 인물이고, 그 다음 1624년(인조 2) 생원에 합격한 黃緬은 본관은 장수·字 遠甫·號 晩悟로 정경세의 문인으로 문학과 행의가 있는 인물이다. 『준분록』은 17세기 중반 옥동서원의 인적구성을 일부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의례 역주2,향음주례 향사례』, 박례경 외, 세창출판사,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650년(효종 1) 경상도 상주목 옥동서원 駿奔錄
자료의 내용
본 駿奔錄은 옥동서원에서 거행된 執事分定錄의 명단을 기록한 자료이다. 본 자료는 옥동서원 소장 준분록 10책 가운데 하나로 경인년 즉 1650년(효종 1)에 작성된 문서로 겉표제에는 준분록과 집사분정록으로 되어있고, 본 좌목에는 관직, 성명만이 기재해 두었고 執事는 별도로 없다. 이때 옥동서원은 1580년(선조 13) 방촌 황희의 영당을 건립하고 춘추향사를 봉행오다가 1714년(숙종 40)에 사림들의 중론에 의해 沙西 全湜을 배향하고 서원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이듬해인 1715년(숙종 41)에는 신덕리에 위치한 방촌 황희의 영당을 현재의 자리로 이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총 58명이 수록된 현황을 살펴보면 경인년 봄 亭時 19명, 경인년 가을 享時 2명, 임자년 봄 14명, 계축년 봄 23명 네 차례에 걸쳐 이루진 향사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옥동서원의 향사는 일반적으로 음력 춘3월과 추9월 上丁日 사당인 景德祠에서 행하되, 만약 國忌日이 겹치게 되면, 中下末丁에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향사는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인 子時 末에 치러진다. 옥동서원 유사는 크게 享有司와 別有司가 있으며, 원장과 같은 방식으로 임명된다. 향유사는 향사를 치르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향사 때의 제 집사를 奉請 할 수가 있다. 반면, 별유사는 2명이 임명되는데 句官有司라고도 부른다. 별유사 2명은 각각 타성 1명, 본손 1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본손은 옥동서원 제향자인 황희의 후손, 즉 장수황씨 일족을 뜻한다. 별유사가 서원의 업무 일반을 총괄하며, 각종 재정 관련 사항의 실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향사 준비와 관련된 각종 업무와 제 집사의 선발은 이들 원장과 향유사·별유사 간의 유기적인 업무 분담과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새로 선임된 원장과 유사에게는 향사가 마친 보름 이내에 薦紙를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향사가 끝난 후 새로 선임된 원장과 유사는 각각 춘향을 앞두고는 정월 초닷새 날, 추향을 앞두고는 팔월 초하루 날 焚香을 한 뒤 봉청자의 추천과 향사 등과 같은 서원의 당면 현안 등을 논의한다. 옥동서원의 분향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이루어지며, 향유사 1명과 별유사 1명이 거행하는데, 초임 원장도 첫 분향시는 분향을 하는 것을 원칙이다. 제 집사의 봉청은 향유사가 행한다. 이때 추천된 제 집사에게도 천지를 발송하는데, 춘향은 음력 2월 초하루 날, 추향은 8월 초 하루날 발문하여 일주일 안에 송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외 아헌관과 종헌관은 원장과 유사 등과 협의 하여 천거한다. 한편, 祝과 찬자贊者는 사전에 잠정적으로 정하되, 일반 제관으로 봉청하며, 향사당일 분정하는 형식을 따른다. 이상 초헌관·아헌관·종헌관·축·집례에 대하여 옥동서원에서는 五執事라고 부른다. 본 준분록에는 집사분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현재 옥동서원 향사 때 봉무할 제 집사에 대한 분정은 오후 5시에 이루어진다. 옥동서원의 강당인 蘊輝堂에는 목판으로 제작된 분정판이 걸려 있는데, 지난 향사 때의 헌관 이하 제 집사의 명단이 한지에 묵서되어 걸려 있다. 이것을 금번 향사의 것으로 교체하여 부착한 뒤, 다음 향사 때까지 게시해 둔다. 習儀, 制祝, 夜話, 封尊, 實饌과 陳設 등이 모두 준비되면 향사는 새벽 1시에 봉행하며 1시간 전 향사를 통고한다. 제관들은 세수를 한 뒤, 의관을 챙겨 입고 10분 전까지 준비를 완료한다. 향사는 옥동서원에 전해지고 있는 전통 홀기에 따라 거행하는데 獻幣禮 - 初獻禮 - 亞獻禮 - 終獻禮 - 飮福受胙 - 望燎禮 - 飮福禮 순으로 진행이 된다. 공식적으로 음복례가 끝나야지 모든 향사 제례가 끝나는 것이다. 모든 제관들은 강당에서 相揖禮를 행하고, 좌정한 뒤 음복을 시작한다. 음복 도중 금번 향사에 문제점 없었는지, 개선해야 될 것은 무엇인지 두루 의견을 묻는다. 음복례가 마치면 원장 이하 임원들이 모여 후임 원장 등을 추천한 후 罷座한다. 제례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성씨별 구성을 살펴보면, 黃氏 46명, 申氏 5명, 金氏 3명, 陸·朴·張氏·미상 각 1명씩이며, 옥동서원 배향자의 후손 장수황씨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 외 5개의 성씨가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장수황씨가 서원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또 다른 선조를 1783년(정조 7) 畜翁 黃孝獻과 槃澗 黃紐를 추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전식 배향 직후임에도 그의 후손인 옥천전씨는 단 1명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첫 입록자인 黃級은 찰방을 역익한 인물이고, 그 다음 1624년(인조 2) 생원에 합격한 黃緬은 본관은 장수·字 遠甫·號 晩悟로 정경세의 문인으로 문학과 행의가 있는 인물이다.
자료적 가치
『준분록』은 17세기 중반 옥동서원의 인적구성을 일부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자료에 나타난 인물들은 대부분 황희 후손 장수황씨들이 서원의 운영에 깊이 관련하고 있었던 인사들이었다. 이를 통해 초기 옥동서원이가 가지고 있던 운영양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옥동서원의 향사 집사분정의 양상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의례 역주2,향음주례 향사례』, 박례경 외, 세창출판사,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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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駿奔錄附
執事分定錄
庚寅春
亭時駿奔錄
前察訪黃級
生員黃緬
幼學朴峻哲
黃克悌
申瀷
黃德丞
黃德一
黃德養
黃德胤
黃亥信
僉知黃怩
金景一
黃震龍
金景希
申伯立
申難生
金景橉
黃坤碩
黃雲龍

庚寅秋
享時駿奔錄
幼學黃惺
黃■■

壬子秋亭駿奔錄
幼學黃■
黃褒
黃后奭
陸弘道
申命羲
黃袌
黃{雨+沃}
黃鏡
黃鍾遠
張重璧
黃鍾振
黃緻
黃坤碩
黃練
癸丑春享駿奔錄
黃載厚
黃■■
黃■■
黃霆
黃霂
黃載萬
黃霍
黃載大
黃雷
黃霱
黃商擧
黃后奭
黃后袁
黃襃
申命羲
■■■
黃鍾振
黃緻
黃練
黃■■
癸丑春享駿奔錄
黃宇完
黃鍾鼎
黃允中壬人生丁亥三月十九日來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