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 驪州李氏 宗宅인 無忝堂에 보관하였던 書籍들의 目錄
慶州 驪州李氏 宗宅인 無忝堂에 보관하였던 書籍들의 目錄이다. 적서시비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19세기 후반에 옥산서원에서 무첨당으로 관련 자료를 옮겨온 후 그것을 정리하여 상자에 구분한 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보면 모두 4개의 상자에 나누어 다양한 成冊을 보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오늘날에는 대부분 망실되어 없는 것들이며, 목록을 통해 어떠한 자료들이 생성되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성책의 특성에 따라서 제1궤에는 옥산서원 관련 자료가 있다. 현재 전하지 않는 『靑衿錄』, 『청도토지성책』, 『講案』,『刊所考往錄』, 『考往錄』, 『久書記錄』, 『御製奉安時日記』,『體仁廟重修日記』 등이 주목된다. 그 외에는 옥산서원 토지와 노비, 타작기, 도지책 등 경제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제2궤에는 『계정사변』,『서원사변』,『천록사변』,『옥산사변』,『무서사실』,『잠계집변무사실』,『신유분임문보사적』,『원사가고축』 등 옥산서원의 내외부에서 발생하였던 사건들에 대하여 정리한 성책들이 보관되어 있다. 현재 모두 전해지지 않지만 제목을 통해 그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원사가고축』은 옥산서원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간략히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무서사실』은 『태극문변』의 중간이후 발생한 사안에 대한 변무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계정사변』과 『잠계집변무사실』 은 이전인의 『關西問答錄』 간행을 둘러싸고 18세기에 양동의 적파와 옥산의 서파, 도산서원과 서파 간에 발생하였던 적서시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독락당 어서각에 소장된 서적들을 옥산서원으로 강제로 송치하는 등 적서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제3궤에는 이언적의 종가인 무첨당과 이의윤을 제향하는 景山祠 건립 및 운영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여기에는 慶州孫氏들과 학문연원을 두고 발생하였던 손이시비와 관련한 『東江顚末』이 있으며, 회재의 가묘에 내려진 賜祭시의 절차와 지출현황, 전체 일정을 기록한 『사제시도기하기급일기』, 『祗迎名帖』가 있다. 아울러 경산사 건립과 관련된 『논위입석시도기급집사시운』,『경산입향시집사』,『고왕록급전답안』이 있다. 또한 경산사 건립 이전에 이의윤을 흥해 곡강서원에 추배하기 위한 과정을 기록한 『곡강추배시집사급사실』도 주목된다. 아울러 19세기 중반 간행된 이의윤의 『무첨당집』 간행을 위한 『간역집사기』도 확인된다. 『入格薦』은 경산사에서 유생을 선발하는 과정이 옥산서원과 같았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즉 유생들은 천주의 천거를 통해 선발하고, 考講을 치렀는데 입격한 자들은 시험을 면제하였었다. 이들의 명단이 『입격천』으로 추정된다. 기타 소장과 잡문기도 성책하여 보관하였는데, 각처에서 도래하였던 통문은 『各處通文可考』로 성책해 두었던 것이 확인된다. 제4궤에는 기타 경제관련 문서들을 보관하였다. 옥산서원과 경산사의 도록과 간소도록 및 각종 모임의 회원 명단이 기록된 자료들이다.
자료적 가치
이 목록은 현재 전하지 않는 옥산서원과 경산사 자료에 대한 실체를 증명하는 자료이다. 옥산서원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적서시비가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관련 자료들을 무첨당으로 옮겨 서파들에 의한 무단훼손을 방지하고, 추후 자신들의 의견을 증빙하는 자료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