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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안동 호계서당(虎溪書堂)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F.1918.0000-20180630.Y188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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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이중식, 옥산서원
작성시기 1918
형태사항 크기: 82 X 71.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양동 여주이씨 무첨당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안내정보

1918년 안동 호계서당(虎溪書堂) 통문(通文)
1918년 8월 안동 호계서당에서는 경주의 옥산서원으로 통문을 보내었다. 그것은 안동의 대야 류건휴(1768-1834)가 우리나라의 여러 선생들이 사서를 논평한 말씀을 정리하여 『사서집평』을 백여 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였다. 또한 근래에 청송 서면의 의성김씨 가문에서 『학용요의』라는 것은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사서평집』을 전적으로 베낀 것이라고 했다. 류건휴 후손가에서는 그 판목을 거두어 헐어버리고, 도내의 여러 유생들의 공평한 논으로 두 서적을 비교하여 의혹이 없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김씨 가문에서 책을 간행하여 유포하면서 호계서당이 도내에 통문을 돌렸던 것이다. 통문에서는 그간의 과정을 설명한 후 『학용요의』는 한 문장가의 만록에 불가할 뿐이며, 원본을 어지럽히고 전거가 그릇된 책이므로 모두 환수하여 배척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18년 8월 安東 虎溪書堂에서 靑松 義城金氏 家門에서 간행한 『學庸要義』는 柳健休의 『東儒四書解集評』을 베낀 것으로서 原本을 어지럽히고, 典據가 그릇된 책이므로 모두 還收하여 排斥해야한다고 玉山書院으로 보낸 通文
1918년 8월 安東 虎溪書堂에서 靑松 義城金氏 家門에서 간행한 『學庸要義』는 柳健休의 『東儒四書解集評』을 베낀 것으로서 原本을 어지럽히고, 典據가 그릇된 책이므로 모두 還收하여 排斥해야한다고 玉山書院으로 보낸 通文이다. 호계서당은 안동의 大埜 柳健休(1768-1834)가 경전을 궁구하고, 여러 東儒들의 말씀을 정리하여 『四書集評』을 백여 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청송 서면의 김씨가문에서 『學庸要義』를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오로지 『사서평집』을 전적으로 베낀 것이라고 했다. 일찍이 本家로 投書가 있어서 류건휴 집안의 후손들은 그 판목을 거두어 헐어버리고, 도내의 여러 유생들에게 돌려 보여서 공정한 눈으로 의혹이 없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김씨 가문에서는 註의 중간에 『中興書』를 이어서 찬술한 후 유포하였다. 호계서당 유생들은 이 책은 한 때 문장가의 漫錄에 불과하며, 이러한 책이 서가에 섞여 있는 것은 옳지 않으며, 보는 대로 하나하나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청송의 의성김씨 가문의 金崧鎭은 1918년 『학용요의집록』을 간행하였다. 이 책은 金文熙가 1848년 이전에 지은 것으로 집안에 보관되어 오던 것을 이때에 이르러 간행한 것이다. 大學과 中庸부분이 류건휴의 『東儒四書解集評』과 상당 부분 일치하며, 인용사목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서 류건휴의 글을 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유사서해집평』은 사서에서 논의된 중요한 부분에 가운데 우리나라 先儒들의 주석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집약하여 정리한 책이다. 『晦齋集』,『退溪集』,『月川集』,『高峯集』,『牛溪集』,『栗谷集』 등 63종의 문집을 인용하였다. 권두에 柳必永의 서문이 있는데, 『학용요의집록』에도 류필영의 서문이 있다. 이로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동유사서해집평』을 김문희가 구해 읽고 집필에 참고하기 위하여 보관하던 중 사망하여, 20세기 초 그의 遺筆를 정리하면서 류건휴의 글을 김문희의 글로 오해하여 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통문을 보면, 이러한 오해가 확인되어 全州柳氏 가문에서 검증을 요구한 가운데 청송의 김씨 가문에서 간행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에 전주류씨 가문을 대신하여 호계서당에서 청송의 의성김씨 가문을 비판하고, 잘못 간행되어 유포된 서적의 환수와 파기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자료적 가치
19~20세기 초에 활발히 전개되었던 조상 현양사업의 한 사례가 文集, 遺集의 간행이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현양사업으로 여타 가문과 마찰이 발생하기 하였다. 본 통문은 안동의 전주류씨 가문과 청송의 의성김씨 가문 사이의 시비 내용과 도내로 확산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일정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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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通文
右通論事竊以末俗匡大士吳僞詐百出若其攘取人典以耤而欲眩耀於來後者亦世變之一端也生等旣的知其眞僞淑慝則亦安得閉戶噤嘿
不爲同省 僉君子一誦乎鄙鄕近世有大埜柳公窮經積學嘗纂輯東儒諸說章分句彙編成四書集評若于卷其精該淹博固有
羽翼元書嘉惠後學之功而帙浩力綿藏在蠹篋且百餘年矣近有松西面金氏刊行所謂學庸要義者卽一集評書之傳謄者也
其部伍面目不待考準而證左借癡流布自有路逕之眞的故自本家盖嘗投書而條卞其說對面而示以手本則金氏諸人摧沮自
首悉陳無蘊而其意只欲爲漫漶彌掩退托時月若無汲汲釐正之意則埜翁家後人之所以處之者只有毁其板收其須不使熒惑
於公眼而旋念道內 僉君子所居隔遠聞聆未悉則其於進退從違之間安淂不趦趄而前却乎昔向秀著秋水註而郭象竊爲已
註隙紹纂中興書而法盛竊爲已書此不過一時文章家謾錄而猶見斥於當時傳笑於後世況今發揮子集所係甚重攘取儒
錄而其罪難原者乎噫杜撰訛謬之書不容混積於二酉芸編之間傳謄剽掠之錄不可暫弆於四子棐几之上竊願 僉尊燭破奸
黠辨別眞贋所須要義冊子一一還斥不許其眩誣乃所以拒詖扶正之一道也若或嬚其迫切憐其蒙騃而爲苟且姑息之計則其於爲
金氏之地亦非所以極捄陷溺之意也惟 僉尊諒察幸甚
右通文
玉山書院
戊午八月 日虎溪書堂都有司前參奉李中軾
齋有司幼學 柳廣鎬
趙萬容
金學模
公事員幼學 李鍾夔
金翊模
曺司 幼學 金興魯
柳璋植
李誠求
李鉉復
製通 幼學 李鍾濬
李心求
寫通 朴圭陽
金萬植
權秉傳
會員 進士 柳淵博
幼學 金益洛
李兢淵
李瑧
前參奉 金柄洛
幼學柳淵楫
金瀅模
權秉變
李壽蔡
金學圭
前參奉金秉植
幼學李宅洛
柳權鎬
金弘植
前承旨金鎭懿
幼學柳中植
洪永銓
金章洛
張景根
柳致遇
金翰周
權永喆
金翰洛
裵淵載
河文煥
裵光稷
權用稷
柳淵根
李承健
柳秉鎬
南炳日
前承旨金鴻洛
幼學柳晦植
金濬洛
李亨珪
柳敬熙
李壽必
柳淵龜
權進憲
金應植
朴齊龜
柳淵鱗
權禹鉉
李羲植
卓逵夏
李成鎬
張景楫
金秉宗
進士柳東杰
幼學金憲植
河中煥
金萬周
柳淵珪
權泰東
金世煥
柳泰熙
金晩植
柳承春
李南起
金奎煥
南炳斗
柳東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