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8월 安東 虎溪書堂에서 靑松 義城金氏 家門에서 간행한 『學庸要義』는 柳健休의 『東儒四書解集評』을 베낀 것으로서 原本을 어지럽히고, 典據가 그릇된 책이므로 모두 還收하여 排斥해야한다고 玉山書院으로 보낸 通文
1918년 8월 安東 虎溪書堂에서 靑松 義城金氏 家門에서 간행한 『學庸要義』는 柳健休의 『東儒四書解集評』을 베낀 것으로서 原本을 어지럽히고, 典據가 그릇된 책이므로 모두 還收하여 排斥해야한다고 玉山書院으로 보낸 通文이다.
호계서당은 안동의 大埜 柳健休(1768-1834)가 경전을 궁구하고, 여러 東儒들의 말씀을 정리하여 『四書集評』을 백여 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청송 서면의 김씨가문에서 『學庸要義』를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오로지 『사서평집』을 전적으로 베낀 것이라고 했다. 일찍이 本家로 投書가 있어서 류건휴 집안의 후손들은 그 판목을 거두어 헐어버리고, 도내의 여러 유생들에게 돌려 보여서 공정한 눈으로 의혹이 없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김씨 가문에서는 註의 중간에 『中興書』를 이어서 찬술한 후 유포하였다. 호계서당 유생들은 이 책은 한 때 문장가의 漫錄에 불과하며, 이러한 책이 서가에 섞여 있는 것은 옳지 않으며, 보는 대로 하나하나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청송의 의성김씨 가문의 金崧鎭은 1918년 『학용요의집록』을 간행하였다. 이 책은 金文熙가 1848년 이전에 지은 것으로 집안에 보관되어 오던 것을 이때에 이르러 간행한 것이다. 大學과 中庸부분이 류건휴의 『東儒四書解集評』과 상당 부분 일치하며, 인용사목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서 류건휴의 글을 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유사서해집평』은 사서에서 논의된 중요한 부분에 가운데 우리나라 先儒들의 주석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집약하여 정리한 책이다. 『晦齋集』,『退溪集』,『月川集』,『高峯集』,『牛溪集』,『栗谷集』 등 63종의 문집을 인용하였다. 권두에 柳必永의 서문이 있는데, 『학용요의집록』에도 류필영의 서문이 있다. 이로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동유사서해집평』을 김문희가 구해 읽고 집필에 참고하기 위하여 보관하던 중 사망하여, 20세기 초 그의 遺筆를 정리하면서 류건휴의 글을 김문희의 글로 오해하여 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통문을 보면, 이러한 오해가 확인되어 全州柳氏 가문에서 검증을 요구한 가운데 청송의 김씨 가문에서 간행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에 전주류씨 가문을 대신하여 호계서당에서 청송의 의성김씨 가문을 비판하고, 잘못 간행되어 유포된 서적의 환수와 파기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자료적 가치
19~20세기 초에 활발히 전개되었던 조상 현양사업의 한 사례가 文集, 遺集의 간행이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현양사업으로 여타 가문과 마찰이 발생하기 하였다. 본 통문은 안동의 전주류씨 가문과 청송의 의성김씨 가문 사이의 시비 내용과 도내로 확산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일정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