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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성주 회연서당(檜淵書堂)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F.1906.0000-20180630.Y188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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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옥산서원, 회연서당
작성시기 1906
형태사항 크기: 88 X 48.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양동 여주이씨 무첨당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안내정보

1906년 성주 회연서당(檜淵書堂) 통문(通文)
1906년 3월 성주 회연서당에서 회재 이언적의 학문연원을 문제 삼은 손씨들을 비판하고, 손씨를 옹호하는 글을 쓴 퇴계의 후손들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옥산서원으로 보내온 통문이다. 회연서당에서는 손이시비의 원인이 되었던 『우재선생실기』의 연원도맥은 퇴계의 행장에 따르면 손씨들의 거짓이 분명하다고 했다. 아울러 손씨들의 입장을 옹호한 진성이씨 3인은 선조의 가르침을 배반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이 쓴 글들이 비록 대현의 도맥을 전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더라도, 퇴계의 후손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여 바꾸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옥산서원에서 그들 진성이씨 3인에 대하여 꾸짖어서 잘못을 깨닫도록 하고, 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통문으로 알려서 함께 분명하게 엄하게 하소연하여 벌을 받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6년 3월 星州 檜淵書堂에서 晦齋 李彦迪의 學文淵源을 문제 삼은 孫氏들을 비판하고, 손씨를 옹호하는 글을 쓴 退溪의 後孫들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玉山書院으로 보내온 通文
1906년 3월 星州 檜淵書堂에서 晦齋 李彦迪의 學文淵源을 문제 삼은 孫氏들을 비판하고, 손씨를 옹호하는 글을 쓴 退溪의 後孫들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玉山書院으로 보내온 通文이다. 통문을 보면 『愚齋先生實紀』에서 淵源道脈을 晦齋 李彦迪에게 傳授하였다고 하고, 회재의 후손들이 그에 대하여 辨說을 하였다고 한다. 다만 회연서당측은 400년 전의 일이기에 後人들이 그 실제 자취를 궁구할 수 없으며, 300리나 떨어져 있어서 참관하거나 들을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退溪 李滉이 지은 晦齋의 狀德文에서는 從遊나 受業은 보이지 않고, 授受한 곳이 없다는 등이 남아있으니 두 가문의 是非는 이미 완료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지금 홀연히 퇴계의 후손이라는 자들이 갑작스레 자신의 글을 先賢의 문집 뒤에 붙이려는 영광으로 인해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先祖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죄를 지었으니 애석하다고 했다. 또한 眞城李氏 3인의 말이 비록 대현의 道脈을 전하는 것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에는 부족하더라도, 특히 陶山의 후예로서 다른 자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여 바꾸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상에서와 같이 손이시비는 『愚齋實紀』를 편찬하면서 李象靖의 상량문 문구 중에서 ‘淵源道脉’를 附註하고, 나아가 이들 자료에 근거하여 孫海翼, 孫最秀 등이 이언적의 학문이 孫仲墩에 연원하고 있다는 내용의 詩와 跋文을 진성이씨 李晩燾, 李炳鎬, 李晩煃에게서 얻어 싣고 이를 반포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손씨측이 이 실기를 중간하면서 진성이씨 3인의 시와 발문을 받은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손씨측 입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하여 회연서당은 옥산서원에서 진성이씨 후손들을 꾸짖어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도록 하고, 그들이 깨닫지 않는다면 통문으로 알려서 함께 살펴서 엄히 하소연하여 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자료적 가치
영남의 3대 시비의 하나였던 손이시비와 관련된 통문이다. 한 동네에서 수백 년간 살았던 손씨와 이씨 가문은 경주와 영남을 대표하는 명문가였다. 이들 가문의 대결은 향내 사족들을 분열시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회재의 학문연원은 사림 전체의 도통과 관련된 문제였기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시비이기도 하다. 본 통문은 당시 성주 회연서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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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通文
右文爲回告事伏以在後孫欲尊祖其心何限而尊之爽其實則非尊祖也不考自家之先訓而傳會於爽實 之文亦非
所以尊人之祖也生等竊聞 愚齋先生實紀者出而淵源道脈有若傳授我 晦齋先生晦翁後孫方若口辨說云而只
恨生晩於四百載之後不能究其實跡地之距亦三百里而不能參觀聽之末矣伏讀 退陶老先生撰 晦齋先生狀德文至未
見從遊受業無授受處等處兩家是非已了然分晰於朗中矣今承來 諭忽有 退陶先生後孫者急於自已文之榮附
於先賢集後而不暇顧念於背先訓之反爲得罪以惜乎字將尋字無難下筆抑亦 景節公之所退讓不受則愚未見背先訓
者能尊人之祖也噫彼三人者之言雖不足重輕於大賢道脈之傳而特以陶山後裔易眩人之耳目矣望須先自 貴院責之諭之使
之改悟如其不悛通告同省嚴辭致罰則鄙等亦不後於人矣諒察幸甚
右文回
玉山書院
丙午三月 日 檜淵書堂會中幼學鄭基和
崔潤東
裵仁模
李鳳宇
朴性奎
張繼憲
鄭玹錫
進士李柄瑦
幼學裵東淳
鄭遠永
李達永
前校理鄭在敎
幼學李玄淑
金永珪
鄭在夔
崔順東
裵相禹
鄭建永
鄭久和
朴圭善
金仁鎬
鄭在德
鄭民容
鄭翼鎬
李鳳根
朴昌瑨
崔璣東
鄭奎鳳
朴海增
鄭箕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