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도유사(都有司) 유학(幼學) 권도원(權道源) 등 통문(通文)
1902년 2월 도유사 권도원 등이 안동 가구리의 감원정 터에 투장한 안동부 향리 권좌금을 처벌하자는 의견에 서명하지 않는 경주 사림을 설득하기 위하여 옥산서원에 보내온 통문이다.
통문에서는 회곡 권춘란(1539-1617)이 만년에 지은 감원정이 무너지고 터만 남은 지 수백년이 되었지만 그의 묘지명과 선현들의 시에 그 유풍이 잘 남아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문인들의 후손들이 다시 건립하기로 논의하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안동부 향리 권좌금이 그의 아버지를 그 터에다가 투장하였다. 안동 사림들의 이것은 사문의 극변이자, 풍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서, 부군사에게 진정하고 연계하여 도내 여러 고을에서 유림들의 서명을 광범위하게 받았다. 즉 공론을 수렴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경주지역은 권춘란의 후손들이 거주하기에 그들에게 연명을 받도록 했지만 경주의 사림들이 믿을 수 있는 기록이 없다고 연명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권도원 등은 경주 사림들을 설득하고자 본 통문을 보내어 감원정을 건립하여 도내 사림이 모두 함께 공경하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