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영천(永川)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門中) 통문(通文)
1883년 영천의 창녕조씨 문중에서 금오사터에 경주의 김모가 투장을 하였으며, 이를 파내고 감영과 경주부에 하소연하여 그 못된 버릇을 징벌해주길 요청하는 통문이다.
통문을 보면 대원군의 원사 훼철이후 매월당 김시습을 제향하던 금오사가 사라지고 그 터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영천의 창녕조씨 문중에서는 자신들이 소문으로 김씨 성을 가진 자가 지난해에 금오사터에 투장을 했다고 들었다고 한다. 조씨들은 선현을 제향하던 곳에 사사로이 무덤을 쓰는 것은 세상의 도리가 극변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선조 조상치와 김시습이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자신들은 먼 곳에 떨어져 있기에 부득이 옥산서원 사림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이러한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옥산서원에서 경주의 공론을 끌어내어서 김씨를 감영과 경주부에 진정을 하여 잘못된 버릇을 징벌하면 다행이겠다고 했다. 이 통문은 대원군의 원사훼철이후 옥산서원이 경주를 대표하는 서원이자, 향론을 주도하는 곳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