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48년 10월 기계면(杞溪面) 풍헌(風憲) 고목(告目)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F.1848.4713-20180630.Y1850107029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고목
내용분류: 정치/행정-보고-고목
작성주체 기계면 풍헌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작성시기 1848
형태사항 크기: 32.6 X 40.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안내정보

1848년 10월 기계면(杞溪面) 풍헌(風憲) 고목(告目)
1848年 10월 기계면 풍헌 최치범이 답계리에 거주하는 최지화가 옥산서원의 유생인지 신원을 조회하는 고목이다. 풍헌은 최지화가 옥산서원 유생으로 들어 갔느ᇿ지 알지 못하겠기에 이미 사람을 보내어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호적단자를 거두어 경주부에 들어가니 답계리의 사람을 다시 보고하라고 해서 삼가 아뢰니 유생에 들이는 것을 허락한 이유를 온전하게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48年 10월 杞溪面 風憲 崔致範이 踏溪里에 거주하는 崔之化가 玉山書院의 儒生인지 身元을 조회하는 告目
1848年 10월 杞溪面 風憲 崔致範이 踏溪里에 거주하는 崔之化가 玉山書院의 儒生인지 身元을 조회하는 告目이다. 풍헌은 최지화가 옥산서원 유생으로 들어갔느ᇿ지 알지 못하겠기에 이미 사람을 보내어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호적단자를 거두어 경주부에 들어가니 답계리의 사람을 다시 보고하라고 해서 삼가 아뢰니 유생에 들이는 것을 허락한 이유를 온전하게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옥산서원은 18세기 말 이래로 일반민들을 서원의 원생으로 『玉山書院 院生案』入錄하여 경주부의 허락을 받아서 避役되도록 했다. 그 댓가로서 身貢을 받아 서원 운영에 일조하였다. 이후 원생들의 원내 역할과 재정상 비중이 커져가면서 이들의 요구도 높아갔다. 이에 19세기 들어와서는 『儒生案』으로 이들의 명단을 기록한 장부의 명칭을 바꾸었다. 신분제가 붕괴되고 있던 당시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이 자료는 조선후기 지방행정 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일정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즉 수령이 임명한 풍헌이 각 면을 단위로 사람들을 단속하고, 하부 행정실무를 담당하였음 보여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告目
問安是乎旀伏慕區區無任下誠之至第
本面踏溪里崔之化則玉山儒生擧
行不知是遣已報而今番戶籍收單入府
以本里人更報伏達許科緣由全次
行下向敎告課
戊申十月初二日杞溪面風憲崔致範
告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