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辰年 正月에 東江書院 士林이 院屬들을 軍伍에서 蠲頉해 달라고 慶州府尹에게 올린 牒呈
1883년 10월 慶州 幼學 李玉祥·李在璜·李能立 외 171명이 春享을 闕享하게 한 李在謙 등의 新儒들을 監營에서 직접 조사하여 처벌하길 요청하는 上書이다.
본 상서는 경주에 거주하는 여주이씨 후손들이 연명하여 10월 초하루의 향례시에 신유들이 난입하여 焚香을 방해하고 舊儒들을 폭행하는 사건에 대하여 해당자들을 처벌해주길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상서는 10월 3일에 작성하여 발송한 것으로 12일에 감영에서 回送되었다.
상서에서 보면 적서시비는 이미 60년 전부터 있어왔다. 당시에는 감영과 경주부에서 구유들을 옹호하면서 신유들의 활동을 제약하였었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서는 강당에 난입하고, 신문을 에워싸고, 신유들이 선출한 유사가 齋服도 입지 않고, 묘지기도 기다리지 않고 몰래 들어가 분향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아울러 10월 초하루의 분향례에서는 100여 명을 모아 미리 강당에 진을 치고, 서원의 모든 문을 닫아걸고 구유들의 접근을 막았으며, 유사도 ㅤㅉㅗㅈ아내었다. 서원의 진입로인 송단에 진을 치고 구유들을 몰아내고, 당일 저녁에 서원 인근에서 식사하려는 것도 난입하여 분탕질을 하면서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였다. 나아가 신유들이 현재 감영과 경주부에서 자신들을 規戒하지 않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리를 지어서 서원을 드나들고, 여기저기에 돈을 분배하여 거두면서 자신을 살찌우고 질서를 해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발생시키는 것은 溪亭이 아니라고 했다. 즉 계정을 차용하여 서원의 지척에 세력을 두고 있으면서 일부의 신유들이 사단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후손으로 하면 李鍾壽와 李在謙이 수괴가 되고, 마을 사람으로 하면 辛宗海와 孫星煥이 수괴가 된다고 적시하였다. 이들이 거칠고 사납게 행동하면서 술을 마시고 호기를 부리며, 웃통을 벗고 위세를 부리기에 구유들은 그들에 견줄 자가 없다고 했다. 나아가 이들이 힘으로 더욱 방자하게 구는 것은 감영과 경주부에서 징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서원을 어지럽히는 습속이 갈수록 더해져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관부를 비판하였다.
나아가 이들의 행태를 그대로 둔다면 수백 년간 이어져온 香火를 그치게 한 죄로 관찰사 역시 그의 조상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압박하였다. 즉 李彦迪과 관찰사 趙康夏의 先祖 趙宗敬과의 관계를 내세워서 회재 후손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길 바랬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감사 조강하는 앞서의 제음에서 말한 것처럼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다면 선비로서 대접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만일 이러한 일이 없다면 책임은 訴狀을 쓴 선비, 즉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의 제음을 회수한 후에 일의 유무를 조사하여 사실대로 보고하라고 판결하였다. 자신의 선조까지 거론된 상서로 인해 다소 격앙되었던 감사는 사건을 조사하여 거짓이 들어나면 소장을 제출한 자들도 엄히 처벌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후 감영에서 경주부로 이 사안에 대하여 조사하도록 관문을 내려 보내자, 경주부에서는 신유와 구유측의 인물들을 관청에 불러 대질하였다. 대질 심문과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다시금 신유와 구유간의 대립이 발생하여 보름날 분향례도 정지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경주부윤은 두 세력을 힐책하는 한편 그간의 조사된 결과를 감영에 다시 송치하였다. 감영에서는 10월 25일 다시 제음을 보내와서 신유과 구유를 모두 힐책하며, 분향례의 파행은 두 세력 모두의 잘못이라고 보고 향후 같은 일이 재발하면 두 세력을 모두 엄히 처벌하겠다고 판결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상서는 19세기 말 옥산서원의 원임직 소통을 두고 발생하였던 적서시비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후손들이 조상과 관련된 시비에 나서는 것은 해당 고을 수령을 거쳐서, 감영으로 진정서를 올렸다. 그러나 公議를 수합한다는 명분에서 후손들의 진정서 이전에 향내 사림들이 연명한 상서를 먼저 올렸다. 본 상서는 적서시비의 과정에서 제향자인 이언적의 嫡派 후손들의 참여 범위와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8~19세기 慶州 玉山書院 院任職을 둘러싼 嫡庶간의 鄕戰」, 『古文書硏究』16·17, 이수환, 韓國古文書學會, 2000
『옥원사실(玉院事實)』, 경주 여주이씨 무첨당 소장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