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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수노(首奴) 덕무(德武)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B.0000.4713-20180630.Y18501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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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부사도주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형태사항 크기: 43.6 X 4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안내정보

병자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수노(首奴) 덕무(德武) 소지(所志)
병자년 9월 옥산서원에서는 수노 덕무를 대구부 풍각면에 보내어 원위전에서 수확한 곡화를 거두도록 했다. 그러나 윤9월에 사람을 보냈을 때 소작인들이 곡화의 등급을 속이고, 이미 거둔 곡화를 보내는 과정에서 몰래 떼어 먹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 그래서 실제 옥산서원에 도착한 곡화는 장부보다 훨씬 미달한 수량이 도착하였다. 그래서 덕무가 9월에 와서 덜 거둔 것을 추심하고, 그래도 남은 것은 수령의 힘을 빌려서 추심하고자 했다. 덕무는 이러한 고질적 병폐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완악하고 거친 자들도 있기에 수노 혼자서 이를 바로잡고 모든 곡화를 거둬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10월에 곡화를 미지급한 8명의 소작인의 명단과 더불어 대구부사에게 입지를 내려주길 요청하였지만, 부사는 거절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丙子年 10월 慶州 玉山書院 首奴 德武가 豊角面의 院位畓에서 穀禾의 등급과 수량을 농간하는 자들에게서 원활한 收捧이 이루어지도록 大丘都護府使에게 立旨의 成給을 요청하는 所志
丙子年 10월 慶州 玉山書院 首奴 德武가 豊角面의 院位畓에서 穀禾의 등급과 수량을 농간하는 자들에게서 원활한 收捧이 이루어지도록 大丘都護府使에게 立旨의 成給을 요청하는 所志이다. 옥산서원 수노 덕무는 대구부 풍각면 일대에 있는 원위답의 수확에 맞춰 9월 초순에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갔다. 그때에 곡식을 모으는 과정에서 부정을 잡아내었다. 그것은 곡식을 상중하 3등급으로 옥산서원의 장부에는 있으나, 지난 윤9월 초2일에 보냈을 때는 양인 가운데 나누어 감독하여 차례로 서원이 있는 동네에 도착하였다. 소작인들이 이전에 사사로이 스스로 베어 먹어서 소진한 것을 추심하여 곡식을 갖추었는데 혹 오로지 기만하고 도둑질해 먹는 일을 벌려서 납부하지 않았다. 혹 납부를 하더라도 마땅히 7~8석을 해야하지만 1~2석만 하거나, 마땅히 5~6석을 해야 하지만 단지 10여 斗만 납입하고, 거듭 죽음에 이르러 이치가 어그러지고 납부하지 않은 즉 매년 이러한 습속이 이미 고질적인 폐단으로 되어서 막중한 학궁의 公事를 곁에서 보존할 길이 없다. 이제 추심하여 서원이 있는 동네에 2월까지 이르도록 했으나 힘없는 院僕 혼자서는 推捧하는 길이 전혀 없다. 그런 즉 막중한 위답의 곡식을 오로지 소작인에게 위임하는 것은 매우 아프고 원통한 일이다. 거두지 못한 곡화는 훗날에 다시 별도로 徵捧하기로 하고, 다음으로 완악하고 거친 자등도 거두지 못한 자들을 일일이 뒤에 기록하여 하소연하니 立旨를 成給하여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8명의 미수봉자 명단과 미수 금액을 부기하였다. 이에 대구부사는 이것은 입약으로 들어줄 수 있는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문서는 외지에 있었던 옥산서원의 전답 관리 실태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원위답에 대한 세금을 탈루했던 소작인과 이를 수봉하기 위하여 노력한 서원 측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慶州玉山書院首奴德武
右謹陳所志矣段本院位畓六七石庫 在於豊角面是如乎去初九月初旬今矣身嫡奸執禾裁正
其穀禾上中下三等於本院行尋冊是遣去閏九月初二日良中監分次來倒本面是乎則作者等前
盡爲私自刈食是去乙推尋具穀禾是乎則或專以期瞞偸食爲事而延挓不納是旀或當納七八石者
只納一二石當納五六石者只納十餘斗是遣仍爲至死橫逆而不納是乎則年年此習已成痼弊莫重學
公萬無扶存之路是白齊矣等之推尋次來到本面者于今二月是乎矣以孤弱院僕萬無推捧之路則莫
重位畓穀禾一委於半作者極爲痛惋乙仍于以未捧穀禾日後更爲別來徵捧次頑悍作者等未受一一後
錄仰訴爲去乎立旨成給事 行下爲只爲
行下向敎是事
府使道主 處分
丙子十月 日
未捧後錄
朴順太六斗落四石內三石二斗
朴云安八斗落五石內三石
金正才三斗落一石全未捧
朴貴才二斗落二十六斗全未捧
姜(羌)再古三斗落二石內一石
金下三五斗二刀落四石內一石十四斗
朴熙周四斗落三石十斗內一石十斗
朴連白四斗落二石十斗內十斗

此非立約
之事可
卄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