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06년에 작성된 세덕사 『고왕록(考往錄)』 병인년 기록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WZ.1806.4711-20180630.Y185040202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지역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판본: 필사본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세덕사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현소장처: 경주 세덕사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안내정보

1806년에 작성된 세덕사 『고왕록(考往錄)』 병인년 기록
1806년에 작성된 세덕사 『고왕록』의 병인년 기사이다. 2월에 작성된 것으로 안동의 고죽서원에서 『쌍절록』1권을 발간하여 보내와 본소에 비치하였고, 송단의 송추가 엉성하여 그곳에 1,000여 그루, 좌우의 공터 북쪽에도 시목 30여 그루를, 강당 계단 남쪽에도 백일홍 한그루를 심고, 강당의 서쪽 담장 3~4파가 무너져 내린 관계로 수리하였고, 본사의 경용이 여러 해에 걸친 흉년으로 심히 넉넉하지 못한 관계로 공의를 ㅤㅉㅗㅈ아 제산원(제내원)의 사자 답 3두락을 팔아서 얻은 40냥과 책전 130냥에서 어렵지만 보태어 사용하고 여기서 100냥은 무첨당에 출송하고 70냥은 본소에 두어 취식한다는 내용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慶州 世德祠 연구」,『민족문화논총』45,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1차 작성자 : 윤정식

상세정보

1806년에 작성된 세덕사 『고왕록(考往錄)』 병인년 기록.
[내용 및 특징]
1806년에 작성된 세덕사 『考往錄』의 병인년 기사이다. 2월에 작성된 것으로 안동의 孤竹書院에서 『雙節錄』1권을 발간하여 보내와 本所에 備置하였고, 松壇의 松楸가 엉성하여 그곳에 1,000餘 그루, 좌우의 공터 북쪽에도 柿木 30餘 그루를, 강당 계단 남쪽에도 百日紅 한그루를 심고, 강당의 서쪽 담장 3~4把가 무너져 내린 관계로 수리하였고, 本祠의 經用이 여러 해에 걸친 흉년으로 심히 넉넉하지 못한 관계로 公儀를 ㅤㅉㅗㅈ아 堤山員(堤內員)의 使字 畓 3斗落을 팔아서 얻은 40냥과 冊錢 130냥에서 어렵지만 보태어 사용하고 여기서 100냥은 無忝堂에 出送하고 70냥은 本所에 두어 聚食한다는 내용이다.
고죽서원은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에 위치한 서원으로 白巖 金濟·籠巖 金澍 등 善山金氏 2현을 배향한 곳인데 보내온 서책은 고려말의 문신으로서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中國과 海島에 은거한 김제김주 형제의 遺文 약간과 遺事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당시의 山長은 1791년 8월부터 1792년 1월까지 옥산서원 재임을 역임하였으며, 1809년 8월부터 1810년 1월까지 옥산서원 원장을 역임한 李鼎樸이고, 有司는 李文祥이다.
세덕사는 여주이씨 양좌동 입향조인 李蕃과 그의 2자인 李彦适 부자를 배향하고 있는 곳으로 18세기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종적 유대관계의 강화와 문중 내 각 파별로 직계 조상을 내세워 가계의 위세를 강화하려는 당대의 의식이 반영되어 이언괄의 후손들은 독자적으로 직계 현조를 모시는 서원 건립을 통해, 파내 구성원 간 결속력을 다지고 파조를 선양하여 향촌사회 내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 건립되었다.
당해 년도의 기록은 세덕사 운영의 면면을 보여주는 자료로, 당시에 교우하고 있는 지역 원사와 건물 수리 보수를 통한 운영, 재정 확보의 수단 등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세덕사 재용 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설립 초기에는 문중사우로서 후손들이 出資하여 전답을 매개로 재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을 이어왔었지만, 세덕사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와 工事 및 물품 구입, 居接 등등의 제반 영역에서 소모되는 경비를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점차 드러나는 시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本所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殖利활동을 영위하고, 冊錢을 변통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자료적 가치]
1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경주부 여주이씨 문중사우인 세덕사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本所와 別所, 冊錢 등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던 재용의 세분 운용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慶州 世德祠 연구」,『민족문화논총』45,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1차 작성자 : 윤정식

이미지

원문 텍스트

丙寅二月日安東孤竹書院雙節錄一卷刊送切受置
同月日松壇松楸歸疎處植松千餘株左右基北植抪木
三十餘株堂南堦植百日紅一株
講堂西邊墻三面把壞破因修葺
本祠經用以累年早灾太爲不瞻切從公議斤賣別■
畓堤山員使字三斗落受價四十兩冊錢一百三十兩合一
百七十兩爲結据保用之地一百兩出送無添堂七十兩畓
置本所以別聚殖事
山長李鼎樸
有司李文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