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尙道 順興都護府에 亞椽廳이 새롭게 건립된 후, 아연청에 대한 관리와 아전 가문 인사들끼리의 친목 도모를 위해 1858년 작성한 명부
竹溪亞椽房首任錦案
자료의 내용
1831년 慶尙道 順興都護府에 亞椽廳이 새롭게 건립되었다. 아연청은 아전들이 모이는 장소로 보이는데, 이에 순흥도호부의 아전들은 아연청에 대한 관리와 자신들끼리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명부를 작성하였고, 이를 ‘竹溪亞椽房首任錦案’이라고 하였다. ‘죽계아연방수임금안’은 尹以覺이 쓴 序文 격의 글, 1831년과 1858년의 명부로 구성되어 있다. 본 ‘죽계아연방수임금안’도 185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윤이각이 쓴 서문 격의 글에는 ‘죽계아연방수임금안’의 작성 경위가 대략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순흥도호부의 옛 이름이 興州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고을이 설치된 후 聖廳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亞椽廳이 설치되었다고 했다. 성청은 지방관의 집무처이며, 아연청은 아전들의 집무처로 보인다. 순흥도호부의 유래가 오래되었으며, 그만큼 아전들의 유래도 오래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鳳棲樓의 오랜 유래와 의미를 언급해 놓았다. 봉서루는 순흥도호부에 소재한 유서 깊은 누각으로 아전들은 봉서루 인근에서 遊息해 왔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연청이 새롭게 건립되었기에, 아연청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와 아전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하고자, 관련 인사, 즉 首任 아전들의 성명을 기재한 ‘죽계아연방수임금안’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윤이각의 글 다음에는 1831년 4월 15일 작성된 首任先生錄과 首任錄, 1858년 3월 28일 작성된 명부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1831년 당시 이 모임의 別有司는 金喜鉉과 高德修가 맡고 있었으며, 모두 11명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다. 1858년의 별유사는 秋永百과 李振近이었으며, 명부에는 5명을 수록해 놓았다. ‘죽계아연방수임금안’에 수록된 16명을 성씨별로 나열하면, 李氏 4명, 金氏 3명, 尹氏·趙氏 각 2명, 姜氏·高氏·朴氏·秋氏·洪氏 각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아전들의 존재 양상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조선시대 아전의 役은 세습되었으며, 세습되는 직무에 따라 아전 가문의 격이 달라졌다. 그런 가운데 순흥도호부의 首任 아전들은 아연청을 매개로 결집하였으며, 별도의 명부를 작성하여 자신들끼리의 결속력을 도모해 나갔던 것이다.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