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의 내용
1854년 2월부터 1867년 2월까지 學稧의 계원 명부로 「甲寅二月日 學稧案」이라는 표제로 엮여져 있다. 慶尙道 玄風縣 소재 道東書院에 소장된 자료인 것으로 보아, 도동서원 운영과 관련된 조직으로 추정된다. 학계는 학문 진흥의 목적을 가진 일종의 결사체다. 학계는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는데, 본 학계는 도동서원과 관련된 것이다. 序文이나 節目이 없어 이 학계의 성격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도동서원 운영을 위한 기금 마련, 또는 도동서원 원생의 학술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서 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안의 본문은 오로지 座目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학계의 연혁과 운영 규정 및 특징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가장 말미에 1854년부터 追入하는 자는 ‘逐利許入’이라고 짤막하게 규정해 놓았다. 추입 때 일종의 물력을 납부해야지, 入稧를 허락한다는 규정으로 보인다. 학계안에는 1854년 2월 좌목부터 1867년 2월 13일 좌목까지 모두 11개의 좌목을 수록해 놓았다. 좌목의 계원 명부는 성명을 기재해 놓고, 그 아래에 출생 干支와 字를 세주로 기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원 대부분의 거주지는 도동서원이 소재한 현풍현 지역으로 보이나, 만약 他邑에 거주할 경우 성명 아래에다 해당 계원의 거주 지역을 부기하였다.
본 학계안 수록된 11개의 좌목에는 모두 189명의 계원이 확인된다. 가장 서두의 1854년 2월 좌목에만 137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학계가 결성될 때의 계원으로 생각되며, 나머지 좌목은 10명 내외의 추입된 계원이다. 좌목별로 살펴보면 1854년 2월 좌목에는 137명이 수록되어 있으며, 성씨별로는 郭氏 65명, 金氏 55명, 裵氏 5명, 嚴氏 4명, 朴氏 3명, 柳氏·李氏 각 2명, 成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이어 1855년 정월 추입 좌목에는 郭氏 8명, 李氏 3명, 成氏 2명, 金氏·朴氏·蔡氏 각 1명씩 16명이 수록되어 있다. 1856년 정월 3일 추입 좌목에는 金氏 4명, 郭氏·朴氏·嚴氏 각 1명씩 7명을 수록해 놓았으며, 1856년 12월 16일 좌목에는 郭氏 5명, 成氏 2명, 金氏·朴氏·楊氏 각 1명씩 10명을 수록하였다. 1857년 12월 21일 稧會時 추입 좌목에는 8명을 수록하였는데, 성씨별로는 郭氏 3명, 金氏·崔氏 각 2명, 李氏 1명 순이다. 1859년 12월 4일 좌목에는 李氏 1명을 수록하였으며, 1860년 12월 16일 좌목에는 郭氏와 朴氏 각 1명이 수록되어 있다. 1864년 7월 초8일 좌목에는 李氏·洪氏 각 1명, 1864년 12월 13일 좌목에는 金氏 2명, 1866년 정월 초4일 좌목에는 金氏 3명, 1867년 2월 13이 좌목에는 金氏 1명이 각각 추입되어 있다. 본 학계안에 입록된 189명을 성씨별로 나열하면 郭氏 83명, 金氏 69명, 李氏 8명, 朴氏 7명, 裵氏·成氏·嚴氏 각 5명, 柳氏·崔氏 2명, 楊氏·蔡氏·洪氏 각 1명 순으로 나타난다.
한편, 학계안에 가입된 계원 중에는 현풍현이 아니라 他邑 출신 18명이 입록되어 있다. 이들의 거주지는 靈山·昌寧·高靈·河陽·大邱·星州·晉州로 확인된다. 이들이 세거하는 지역은 도동서원의 배향자 金宏弼의 瑞興金氏 가문 또는 현풍현의 대표적인 재지세력인 玄風郭氏 가문과 인척관계를 맺고 있는 가문들이 세거하는 곳이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서원의 운영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우선 학계는 조선시대 결사체 중 하나였다. 주로 재지사족들이 학문 진흥의 명분으로 결성하였는데, 그 형태는 다양하였다. 특정 인물의 門人들이 스승을 顯揚하기 위해서, 또는 문인들 간의 학문 교유와 결속력 도모를 위해서 결성하기도 했으며, 재지사족들이 자신들이 속한 지역이나 일족 내에서 後學 양성을 위해 학계를 결성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본 학계안은 그 중에서도 서원과 관련되어 있다. 자료에 서문이나 절목 등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학계의 결성 경위와 운영 규정은 확인 할 수 없지만, 도동서원에 소장된 자료인 것으로 보았을 때, 교육을 목적으로 건립된 도동서원 운영 보조나, 도동서원에 入院한 원생 교육을 보조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핸 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도동서원 학계에 참여한 계원들은 도동서원 운영을 주도했던 가문 인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중기 이래 현풍현에는 토성인 현풍곽씨를 비롯하여 서흥김씨·淸道金氏·慶州金氏·善山金氏·密陽朴氏·順天朴氏·寧越嚴氏·平康蔡氏·星州裵氏·壽城羅氏 등의 재지사족 가문이 분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배향자의 후손인 서흥김씨와 현풍현의 대표적인 토성인 현풍곽씨들이 도동서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1854년 2월부터 1867년 2월까지 학계 운영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그 외에도 성산배씨·영월엄씨 등도 일정 부분 도동서원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본 학계의 계원으로도 참여하였다.
한편, 학계와 같은 조직도 조선시대 서원의 경제적 기반 가운데 하나로 이해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서원의 경제적 기반으로는 전답과 노비를 비롯해 院屬, 관의 부조 및 사림의 기부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서원 운영에 관련된 사림들이나 배향자의 후손들이 각종 계를 결성하여 해당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보조하기도 했다. 본 학계의 결성 의도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역시 학문 장려 등과 같은 서원 운영 보조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학계는 도동서원의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도동서원에는 학계와 별개로 서원 운영을 보조하는 補院契와 같은 조직이 운영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