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정조 13)에 작성된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옥동서원(玉洞書院) 심원록(尋院錄)
자료적 가치
서원은 양반이라면 방문하고 싶은, 또 방문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새로 도임한 관찰사, 고을 및 인근 고을의 수령·察訪·都事 등도 서원에 알묘하고 부조하였다. 지방관들뿐만 아니라 소·대과에 급제한 사람들도 新恩 인사, 전직관료, 유학 등도 거주지에 관계없이 서원에 들러 알묘하고 갔다. 후손·방손·外裔들도 끊임없이 서원을 방문하였다.
바로 심원록은 서원 방문자들의 이름을 적은 방명록이다. 심원록은 임원록과 함께 서원에서 중요히 취급했던 문서로 그 등재 여부도 엄격히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심원록 표지에 本官 士人・서얼・中人은 勿書, 표제 인물・鄕員・本府人은 疊書한다는 문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色目이 判異하면 이름을 기재하더라도 인위적인 삭제를 가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원 방문자들의 심원록 작성은 상식화 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참배 후 본관・이름・관직・字・날짜・방문목적・기타 등의 내용을 적는다.
현재 옥동서원에 현전하는 심원록은 모두 9책으로 본 자료는 그 중 하나로 작성연대는 1789년(정조 13)에 작성된 것으로 서원을 방문한 48명의 명단이다. 기재 방식은 위에 언급한 방식과 유사하며 동행자, 방문 소회를 담은 詩도 찾아 볼 수 있다. 서원 방문의 목적은 참배가 주된 이유이며, 帶恩, 숙박 사실도 함께 확인 된다.
이들 방문자들을 그 인원과 성관을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長水 黃 13명, 光山 金 4명, 豐壤 趙 3명, 潘南 朴·商山 金·夏山 成·韓山 李 각 2명, 慶州 孫·廣陵 安·光山 盧·南陽 洪·南原 李·驪興 閔·禮泉 宋·聞韶 金·商山 黃·星山 呂·冶城 宋·延安 李·月城 孫·恩津 宋·宜寧 南·壹山 成·晉陽 姜·晉陽 河·鐵城 南·興陽 李 각 1명 순이다.
27개의 성관 중 황희의 후손인 장수황씨 가문의 비율이 상당이 높으며 광산김씨·풍양조씨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광산김씨는 외손들의 방문이며, 풍양조씨는 15세기 이주한 가문으로 낙동 주변에 정착했으며, 趙光璧·趙靖·趙翊·趙榮遠 등의 인사들을 배출한 상주의 명문가문이다.
자료 내 중요 인물에 대해서는 표점을 찍어 구분했는데 李學源·金斗應·黃冕源·閔光迪·安正履·趙錫虎·孫會慶·宋應朢·宋元陽·姜申永 등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문과 3명, 진사 1명, 생원 5명, 미상 1명이며, 급제한 자들의 거주지는 상주·한성·문의·성주·파주 등의 고을이다.
이 가운데 문과 급제자 3명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조석호는 字는 正則, 號는 三省齋, 본관 풍양으로 1783년(정조 7) 식년시 갑과 2위에 합격 뒤 司圃直長·典籍·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다음 손회경은 字 聖際, 號 竹隱, 본관 慶州로 1783년(정조 7) 식년시 병과 9위에 합격 뒤 注書·典籍·監察·全羅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마지막 송응망은 字는 여첨(汝瞻), 호(號)는 동호(東湖)이며 1783년(정조 7) 식년시 병과 17위로 합격 뒤 注書·典籍·監察·禮曹佐郎·持平 등을 지냈다. 한편 황희의 後孫 達熙와 外裔 李民夏 등은 조상인 황희의 영정을 배알하고 그 감회를 기재해 두었다.
18세기 말 이래 다양한 가문들이 옥동서원 원임직에 참여하게 된 것은 1789년(정조 13)의 사액이 큰 영향을 미쳤다. 사액이 된 이후 경주의 옥산·서악·용산서원과 같이 옥동서원은 상주목의 서부지역을, 도남서원은 동부지역을, 흥암서원은 관내를 영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여전히 상주 사림 이외의 옥동서원에 대한 출입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에도 지방관 방문을 비롯해 대소과 합격자 등의 방문에서 보듯 사액 후 지역 내 위상을 어느 정도 유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옥동서원은 당색이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남인계 서원으로서 자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심원록 분석은 그 서원의 위상을 반영하는 일정한 窓이 될 수 있는데 본 자료를 통해서 옥동서원이 사액받기 이전 대외 인적 네트워크 파악에 일정한 의의가 있다. 또한 옥동서원의 학맥과 인맥, 정치적 성향을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尋院錄』을 통해 본 18세기 전반 陶山書院의 방문과 그 의미」『퇴계학과 유교문화』 53, 김명자,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