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1782년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옥동서원(玉洞書院) 심원록(尋院錄)
자료적 가치
서원은 양반이라면 방문하고 싶은, 또 방문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새로 도임한 관찰사, 고을 및 인근 고을의 수령·察訪·都事 등도 서원에 알묘하고 부조하였다. 지방관들뿐만 아니라 소·대과에 급제한 사람들도 新恩 인사, 전직관료, 유학 등도 거주지에 관계없이 서원에 들러 알묘하고 갔다. 후손·방손·外裔들도 끊임없이 서원을 방문하였다.
바로 심원록은 서원 방문자들의 이름을 적은 방명록이다. 심원록은 임원록과 함께 서원에서 중요히 취급했던 문서로 그 등재 여부도 엄격히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심원록 표지에 本官 士人・서얼・中人은 勿書, 표제 인물・鄕員・本府人은 疊書한다는 문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色目이 判異하면 이름을 기재하더라도 인위적인 삭제를 가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원 방문자들의 심원록 작성은 상식화 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참배 후 본관・이름・관직・字・날짜・방문목적・기타 등의 내용을 적는다.
현재 옥동서원에 현전하는 심원록은 모두 9책으로 본 자료는 그 중 하나로 작성연대는 1768년(영조 44) 8월부터 1782년(정조 6) 4월까지 15년간 서원을 방문한 58명의 명단이다. 기재 방식은 위에 언급한 방식과 유사하며 동행자, 방문 소회를 담은 詩나 방문자 문집 내 기행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서원 방문의 목적은 참배가 주된 이유이며, 소·대과 합격 후 관행에 따라 서원을 방문한 인사 즉 帶恩한 3명도 확인이 된다.
이들 방문자들을 그 인원과 성관을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豊壤 趙氏 7명, 豊山 柳氏 5명, 善山 金氏 4명, 碧珍 李·驪江 李·晉陽 鄭·夏山 成氏 각 3명, 管山 全·密陽 朴·星山 呂·晉山 姜氏 각 2명, 居昌 愼·安東 權·冶城 宋·延城 李·延安 金·延安 李·永嘉 金·月城 孫·月城 李·恩津 宋·鐵城 李·淸州 韓·八溪 鄭·平山 申·平山 尹·河東 鄭·夏山 曹·漢陽 趙·海州 崔·玄風 郭·興陽 李·康氏 각 1명 순이다.
33개의 성관 중 황희의 후손인 장수황씨 가문의 비율이 여타 심원록 처럼 상당이 높으며 풍양조씨·풍산류씨·선산김씨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편 방문자들의 庇仁에 거주하는 黃濬을 제외하면 모두 관내인 상주 또는 인근 고을로 보인다. 이중 중요 인물에 대해서는 표점을 찍어 구분했는데 宋應望·李穦·姜世鷹·金聲秋 4명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모두 문과 급제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강세응과 김성추는 진주강씨, 상산김씨로 상주를 대표하는 가문들의 후예이기도 하다. 특히 상주 낙양 출신인 강세응의 경우 1780년(정조 4) 문과에 급제하여 典籍을 시작으로 司憲府監察·持平·景慕宮令·宗廟令·吏曹佐郞·司諫院正言·掌令등을 역임하고, 外職으로 成歡察訪과 鏡城都護府 判官 등을 역임한 정치가이자 문장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 심원록에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1780년(정조 4) 방문한 立齋 鄭宗魯이다. 鄭經世의 6대손이자 李象靖의 문인으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며 당대 영남을 대표했던 정종로는 1790년 옥동서원 원장을 역임하며, 門樓인 淸越樓의 상량문을 지었다. 옥동서원 역대 원장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에 서원 위상 강화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옥동서원은 1789년(정조 13) 사액 후 다양한 가문들이 옥동서원 원임직에 참여하게 된 것은 사액이 큰 영향을 미쳤다. 사액이 된 이후 경주의 옥산·서악·용산서원과 같이 옥동서원은 상주목의 서부지역을, 도남서원은 동부지역을, 흥암서원은 관내를 영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상주 이외 사림들의 옥동서원에 대한 출입은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정종로로 대표되던 당대 유명 인사들의 방문이 이루어질 만큼 지역 내 위상은 어느 정도 유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옥동서원은 당색이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남인계 서원으로서 자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심원록 분석은 그 서원의 위상을 반영하는 일정한 窓이 될 수 있는데 본 자료를 통해서 옥동서원이 사액받기 이전 대외 인적 네트워크 파악에 일정한 의의가 있다. 또한 옥동서원의 학맥과 인맥, 정치적 성향을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尋院錄』을 통해 본 18세기 전반 陶山書院의 방문과 그 의미」『퇴계학과 유교문화』 53, 김명자,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3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