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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부터 1851년까지 작성된 현풍현(玄風縣)의 향안(鄕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G.1621.2771-20170630.Y17503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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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선생안
작성주체 향안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작성시기 1621
형태사항 크기: 42 X 25
수량: 15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현소장처: 대구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안내정보

1814년부터 1851년까지 작성된 현풍현(玄風縣)의 향안(鄕案)
자료의 내용
본 향안은 1814년(순조 14)부터 1851년(철종 2) 38년 기간 작성된 현풍의 향안으로 총 37명이 등재 되어 있는 명부이다. 자료 명칭은 향안(下)으로 기재되어 있고 좌목은 총3회 걸쳐 입록되어 있고, 그 구성은 본관·字號·생년간지·관직 등에 관한 사항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성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19세기 현풍지역 사족의 분포를 파악할 수 있다. 본 향안을 성씨별로 정리하면 곽씨 44명, 김씨 11명, 박씨 7명, 엄씨 6명, 成氏 3명, 배씨·채씨 2명 순이다. 이들 성씨들에 대한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현풍을 대표하였던 가문으로 玄風郭氏(土姓), 瑞興金氏(金宏弼 후예)를 주축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향안은 18·19세기 전후하여 향안의 성격이 변화하지만 영남지역에서는 기존의 입록 기준과 폐쇄적 성격이 잔존했는데 입록 가문의 변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현풍향안은 그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814년부터 1851년까지 작성된 현풍현(玄風縣)의 향안(鄕案)
자료의 내용
현풍현은 임진왜란 당시 倭軍의 진격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한곳이었기 때문에 현풍현 향안도 이때 소실되었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소실 된 향안들은 17세기에 집중적으로 복구가 이루어지는데 시기적으로 지역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대체로 17세기 중엽까지 향안 입록은 재지사족들의 공론에 의해 추진되는 추세였다. 본 향안도 공론에 의해 임진왜란 후에 복구 된 현풍향안으로 초기 향원 현황 및 재지사족의 동향과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향안은 17세기 이후 경재소가 폐지되면서 鄕廳이나 향교 또는 서원에 각 1부씩 비치하였기 때문에 도동서원에 있는 『향록』도 이러한 연유로 이어져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풍향교에도 도동서원과 작성연대가 같은 『향록』과 『향안설립초정규등초』가 남아있다는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도동서원에는 전해지고 있는 본 향안은 1814년(순조 14)부터 1851년(철종 2) 38년 기간 작성된 현풍의 향안으로 총 37명이 등재 되어 있는 명부이다. 자료 명칭은 향안(下)로 기재되어 있고 좌목은 총3회 걸쳐 입록되어 있고 그 구성은 본관·字號·생년간지·관직 등에 관한 사항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성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19세기 현풍지역 사족의 분포를 파악할 수 있다. 본 향안을 시대별, 성씨별로 구분하면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814년 작성된 첫 번째 좌목은 곽씨 23명, 김씨 5명, 박씨 3명, 배씨·成氏·엄씨·채씨 각 1명 순으로 등재되어 있다. 1829년(순조 29) 작성된 두 번째 좌목은 곽씨 21명, 김씨·엄씨 각 5명, 成氏 2명, 배씨 1명 순으로 등재되어 있다. 1851년(철종 2) 작성된 세 번째 좌목은 곽씨 3명, 김씨·박씨·채씨 각 1명 순으로 등재되어 있다. 상기 내용을 성씨별로 총 정리하면 곽씨 44명, 김씨 11명, 박씨 7명, 엄씨 6명, 成氏 3명, 배씨·채씨 2명 순이다. 이들 성씨들에 대한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현풍을 대표하였던 가문으로 玄風郭氏(土姓), 瑞興金氏(金宏弼 후예)를 주축으로 이들 가문에 비해 가세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도동서원 및 향안에 참여했던 淸道金氏(金仁壽 후예), 慶州·善山金氏, 密陽朴氏(朴惺 후예), 順天朴氏(朴允康 후예), 寧越嚴氏(嚴誡 후예), 平康蔡氏(蔡石堅 후예), 壽城羅氏(羅世謙 후예), 星州裵氏(裵嗣宗 후예) 등이 유력 가문들이었다. 여기 등재된 성씨들이 바로 현풍을 대표하던 사족 가문들의 구성원 이었다. 특히 현풍곽씨와 서흥김씨는 현풍현을 대표 성관일 뿐만 아니라 성주권 首院 역할을 한 도동서원 운영을 담당했던 성관이기도 하다. 또한 실제 양성은 문벌이나 地望 뿐만 아니라 文科와 生進科 합격자 및 사환에 있어서도 여타의 가문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양성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서인 내지 노론 정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야당인 남인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현풍권 사림 사회를 주도해 나갔다. 일반적으로 향안은 지역차가 있기는 하나 17세기에는 그 기본적 성격은 재지사족들의 공론에 의해 작성된 사족 명부이며, 부·모·처에 모두 신분적 하자가 없어야 입록 될 수 있었던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19세기 전후하여 향안의 성격이 변화하고 재지사족의 대응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영남지역에서는 기존의 향안 성격이 잔존했는데 현풍향안도 그러한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향안이다.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기존의 향안도 그러했지만 19세에도 현풍현의 향안은 입록 가문의 변동 거의 없이 지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록 인물 가운데에는 향안 외에도 이 시기 도동서원 入院錄과 현풍향교 교안(校案)에도 중복 입록자들이 다수가 확인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각기 문서가 독립적으로 작성·운영된 것이 아니라 모두 양반사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명부로 기능하였고 그 기반을 향권을 장악·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본 향안은 19세기 현풍지역 사족들의 인적구성과 성씨분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도동서원 소장 향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 작성된 향안이다. 임진왜란 이후 현풍지역의 재지사족의 동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향안 내 절대적 비중을 지닌 가문은 현풍곽씨로 이 가문의 族勢가 강했음을 알려준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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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鄕案 下
鄕案
甲戌三月二十九日
郭東一
金萬輝
郭師尹
蔡時成
郭師尙
成㵓
朴泰信
金夏珩
郭處完
郭最垕
郭基玄
郭海朝
郭景憲
郭師閔
郭景栢
郭景梓
郭處定
郭東翰
郭在心
郭師惇
金孝曾
郭龜朝
朴堡
郭潤瑞
裵尙祿
朴之欽
郭慶一
郭慶國
金萬光
郭存勗
郭處大
金夏九
郭鼎九
郭興朝
嚴孝光

己丑十月十一日
郭在七
金繼遠
嚴景光
朴之錝
郭景龜
郭在東
郭景卨
郭龍朝
郭濂
郭弼世
嚴再光
郭潤九
郭重國
裵尙祚
朴之鎔
郭處華
郭景權
郭涵
郭慶弘
嚴應光
郭慶遠
郭相垕
金澯
郭熙朝
朴之秀
嚴坤
金禹圭
金南圭
郭弼禹
成洙
成彦標
郭最堅
郭漢相
郭昌度
郭夢九
嚴圭
金弘老

辛亥三月十二日
金鼎濟
郭利九
郭弼唐
蔡達後
郭弼檀
朴之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