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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7월부터 정묘년 10월까지의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옥동서원(玉洞書院) 분향록(焚香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G.0000.4725-20170630.Y175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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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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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옥동서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형태사항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안내정보

임술년 7월부터 정묘년 10월까지의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옥동서원(玉洞書院) 분향록(焚香錄)
임술년 7월부터 정묘년 10월까지 옥동서원에서 거행된 삭망제를 주관한 인물들을 기록한 명단인 〈분향록〉이다. 본 문서를 비롯한 옥동서원 소장 〈분향록〉에 의하면 삭망제는 대체로 원장과 재임, 유생이 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는 구성원의 직임과 성명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로 황씨의 주도로 향례가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옥동서원이 위치한 천하촌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장수황씨의 세거지로서 서원은 바로 이들 후손의 주도로 건립·운영되었는데 이는 서원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제향의식을 대부분 서원구성원들 특히 문중인 장수황씨에 의해 수행되는 사실이 나타나는 문서이다. 한편으로는 김씨를 비롯하여 전씨, 강씨, 송씨, 백씨 등도 문서에 등장하고 있어 옥동서원 소장 여타의 분향록과 비교해서 보다 다양한 성씨들이 옥동서원 향례에 참여하던 시기에 작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삭망분향은 주로 1~2명의 재임과 유생이 주관하고 있으며 단지 주관자의 성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본 문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면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성관의 분포로 보아 문중 중심으로 서원이 운영되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총 46회의 삭망제가 시행되었는데 계해년부터 을축년까지 삭망제는 어떠한 이유였었는지 3년 동안 실시되지 않다가 병인년 정월부터 다시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시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병인년 4월부터 5월 삭례는 국휼로 인하여 시행하지 않는다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어떠한 국상인지는 적혀있지 않다.
옥동서원에서의 삭망분향을 주관하는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중복적으로 기재된 것을 보이고 있는데, 중복의 경우를 제외하고 20명의 주요 주관인물들의 경향을 살펴보면, 黃氏가 14명으로 가장 많고, 金氏 2명, 姜·白·宋·全氏 각 1명이 등장한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윤정식

상세정보

임술년 7월부터 정묘년 10월까지의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옥동서원(玉洞書院) 분향록(焚香錄)
자료의 내용
壬戌年 7월부터 丁卯年 10월까지 玉洞書院에서 거행된 朔望際를 주관한 인물들을 기록한 명단인 〈焚香錄〉이다. 본 문서를 비롯한 옥동서원 소장 〈분향록〉에 의하면 삭망제는 대체로 원장과 재임, 유생이 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서에는 구성원의 職任과 姓名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로 黃氏의 주도로 향례가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옥동서원이 위치한 천하촌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장수황씨의 세거지로서 서원은 바로 이들 후손의 주도로 건립·운영되었는데 이는 書院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제향의식을 대부분 서원구성원들 특히 문중인 장수황씨에 의해 수행되는 사실이 나타나는 문서이다. 한편으로는 金氏를 비롯하여 全氏, 姜氏, 宋氏, 白氏 등도 문서에 등장하고 있어 옥동서원 소장 여타의 분향록과 비교해서 보다 다양한 성씨들이 옥동서원 향례에 참여하던 시기에 작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질서체계를 이끌어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서원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세워진 사립학교였을 뿐만 아니라 설립과 관련된 특정 유학자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향을 하는 공간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 특히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서원은 교육기능보다는 상대적으로 제향을 통한 선현 숭배의 기능이 크게 강조되었다.
넓은 의미로서의 서원의 향례는 사림의 공론에 의해 결정되고 국가에 의해 인준되는 것이었으므로 여기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일과 다름없었다. 더불어 향례는 유교경전을 비롯한 유교문화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참여 자체가 자신의 유교적 소양을 대외적으로 높이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서원의 제례의식은 유교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현전하고 있는 옥동서원 관련 자료에는 제례와 관계되는 자료는 드문 형편이다. 따라서 분향을 비롯한 여러 제례의 절차나 형식, 내용에 관해서 알려져 있는 부분이 없으나 다만 본 문서를 비롯한 수십여 분향록 및 준분록을 통해 삭망분향시의 참여 인원에 대한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하겠다. 삭망분향은 매달 음력 초하루와 그 달의 한 가운데 날인 보름날에 향을 피워 올리는 비교적 간단한 의례이다.
삭망분향은 주로 1~2명의 재임과 유생이 주관하고 있으며 단지 주관자의 성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본 문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면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성관의 분포로 보아 문중 중심으로 서원이 운영되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총 46회의 삭망제가 시행되었는데 癸亥年부터 乙丑年까지 삭망제는 어떠한 이유였었는지 3년 동안 실시되지 않다가 丙寅年 정월부터 다시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시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병인년 4월부터 5월 朔禮는 國恤로 인하여 시행하지 않는다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어떠한 國喪인지는 적혀있지 않다.
옥동서원에서의 삭망분향을 주관하는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중복적으로 기재된 것을 보이고 있는데, 중복의 경우를 제외하고 20명의 주요 주관인물들의 경향을 살펴보면, 黃氏가 14명으로 가장 많고, 金氏 2명, 姜·白·宋·全氏 각 1명이 등장한다. 옥동서원은 1789년(정조 13)에 사액을 받았는데 이후 상주목의 도남서원과 흥암서원과 함께 관내를 영도하는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다양한 가문들이 서원 운영에 참가하기 시작하였고, 본 문서에 드러나는 여러 성씨들의 참여도 이러한 경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수적인 면에 있어 미비해 당시까지도 상주 사림들의 옥동서원에 대한 출입이 저조한 것이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 당색을 표방하지 않고 있던 옥동서원을 문중서원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더해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제한적이라는 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사회에서 향사를 비롯한 유교적 의례 행위는 사회구성원들이 관계와 경계를 설정하고 형성하는 중요하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대내외적으로 향사에 참여하는 행위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으며, 그 지역사회에서의 주도권을 누가 선점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주요한 척도였던 것이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후반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玉洞書院 소장 성책류 중 삭망분향의 주관자를 기록한 것으로 당시 서원 운영의 주요 성관의 분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시대 서원은 인재를 양성하는 사립 교육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설립과 관련된 특정 유학자의 위패를 모셔 놓고 祭享을 하는 공간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 건립 초기에는 인재양성과 학문연구라는 교육적 기능이 우선하였지만, 점차 先儒 향사와 지역 사회의 교화적 기능이 중시되어갔다. 더불어 서원이 지역별, 학맥별로 유대를 강화해 가면서 그 상징적 제향인물에 대한 제례의식과 기능이 점차 증대되어 갔다. 본 문서는 書院의 제향의식이 명맥을 유지하는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당시의 院任과 院生의 인적구성의 단면을 보여주고, 상주 지역에서 옥동서원에 참여하는 이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윤정식

이미지

원문 텍스트

壬戌七月十五日
焚香錄
焚香錄
壬戌七月望焚
香齋任 全炳哲
八月朔焚
香齋任 金在源
全炳哲
儒生 黃贊周
黃遇周
八月望焚
香儒生 黃繼周
九月朔焚
香儒生 黃傳周
香儒生 黃翊周
十一月望焚
香儒生 黃翊周
十二月朔焚
香儒生 黃翊周
十二月望焚
香儒生 黃在瀅
丙寅正月初五日正端
香齋任 黃在瀅
儒生 黃在軾
黃在昊
黃義宅
黃佾周
黃在傑
金秉式
姜聖熙
黃在尙
黃夏周
黃翊周
黃卓淵
正月望焚
香齋任 黃在瀅
二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齋任 黃在瀅
三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齋任 黃在瀅
四月朔焚以
國恤闕
望焚以
國恤闕
五月朔焚以
國恤闕
望焚
香儒生 黃翊周
六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齋任 黃在瀅
七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齋任 黃在瀅
八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儒生 黃翊周
九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儒生 黃夏周
十月朔焚
香齋任 黃在瀅
望焚
香儒生 黃翊周
十一月朔焚
香儒生 黃夏周
十一月望焚
香齋任 黃在瀅
十二月朔焚
香儒生 黃卓淵
丁卯正端
香儒生 黃繼周
黃在瀅
黃在傑
黃佾周
白武鉉
黃義宅
黃翊周
望焚
香儒生 黃繼周
二月朔焚
香儒生 黃在瀅
望焚
香儒生 黃繼周
三月朔焚
香有司 黃翊周
望焚
香儒生 黃翊周
四月朔焚
香齋任 宋柱河
望焚
香有司 黃翊周
五月朔焚
香有司 黃翊周
望焚
香有司 黃翊周
六月朔焚
香有司 黃翊周
望焚
香有司 黃翊周
七月朔焚
香儒生 黃卓淵
望焚
香齋任 宋柱河
八月朔焚
香齋任 宋柱河
望焚
香儒生 黃卓淵
九月朔焚
香有司 黃翊周
望焚
香有司 黃翊周
十月朔焚
香儒生 黃卓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