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예안 도산서원(陶山書院) 통문(通文)
1907년 10월 24일에 도산서원에서 옥산서원으로 손씨들이 멋대로 ‘연원’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질타하고, 두 가문이 분쟁을 조정하여 원만히 시비가 해결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통문이다. 본문을 보면 도산서원은 동강서원의 상량문과 관련된 일을 일찍이 경험하고는 통열히 분별하여 엄하게 배척하였다고 한다. 다만 생각건대 잘못을 바로잡은 것을 천천히 새겨 고치고 또한 억지로 하는 것이 어려운 바가 있기에 기다렸는데, 시대가 바뀌어 사세가 변하였으니 잠에서 깨어나듯이 손씨가 그 일에서 벗어나는 바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 옥산서원의 말씀을 받고서 손씨의 문자가 미치는 것을 막은 것이 옥산서원이라는 것과 상량문의 글은 대산이 이미 실수하였다 인정하여 수정한 것을 되돌려 수정 전 글을 증거로 하여서, 다시 『실기』를 간행하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차례대로 결정 난 것을 따짐으로써 서로 격하게 대립하고, 손씨들이 기존의 글을 변환하는 것이 심한 까닭에 이러한 말에 대하여 조사한 것을 발송하였다. 그러나 손씨들이 고집이 세고 어리석어서 발송한 것을 물리치고, 생각을 굳히고는 반드시 공의에 힘써 저항하고자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저 손씨은 동강서원을 자기 가문의 사묘로 보고 지었고, 『실기』한 책은 자기 가문의 사사로운 문자로 파악하고 지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렇기에 오직 뜻을 모아서 고치는 것만이 마땅히 해야 될 일이라고 손씨들이 생각한다고 도산서원은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진실된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도산서원은 우리 도학상에서 ‘연원’의 두 글자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마음대로 손씨들이 직접 그러한 어수선함을 일으키고 세계를 나누는 것은 옳지 않으며, 우리 무리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옥산서원 측에 미혹한 것을 지적하고, 미혹한 것을 깨우쳐서 같은 동네에서의 일이 올바르게 조정되어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주길 당부하였다. 만약 손씨들이 잘못된 견해를 고집하여 사사로이 자기 마음대로 고치려고 하더라도 즉시 결단하여 사림의 뜻으로 공포하지 말고, 먼저 윗사람으로써 가르침을 주신다면 다행이겠다고 했다.
사림 전체의 문제로 시비가 커진다면 다 가문의 관계가 더욱 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특히 두 가문의 시비에 퇴계의 후손 3명이 연루되었기에 도산서원의 입장도 매우 곤란하였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경주지역 손이시비의 전말」,『민족문화논총』42,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9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