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10월 초10일 金泉 金山鄕校 會中에서 孫李是非와 관련하여 玉山書院측에게 孫氏들을 儒林 밖으로 물리칠 것을 강하게 聲討하는 通文
1906년 10월 초10일 金泉 金山鄕校 會中에서 孫李是非와 관련하여 玉山書院측에게 孫氏들을 儒林 밖으로 물리칠 것을 강하게 聲討하는 通文이다.
김산향교에서 23명의 회원이 연명하여 손씨들의 儒林에서의 퇴출을 주장하는 통문이다. 유림에서의 퇴출을 곧 유안에서 빼는 것으로 이해된다. 김산향교 측은 조상을 더럽히고, 도통을 어그러트리는 이상한 부류로 손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였다. 나아가 손씨들의 편에서 시와 발문을 지었던 진성이씨 3인에 대해서도 퇴계를 욕보이는 일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들 또한 손씨들의 이상한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고, 명확한 것은 손씨들의 잘못이라고 적시하였던 것이다.
본문을 보면 김산향교 회원들은 賢人을 존경함으로써 무고함을 분별하고 바로 잡아서 道[儒學]을 지키는 것이 선비지만, 조상을 위한다고 사사로이 부족한 조상을 자랑하여 새기는 후손들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儒家에서 서로 경계하고 삼가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손씨들이 先祖인 孫仲暾의 『경절공실기』를 개간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나아가 회재 이언적은 程朱이후 그들을 私淑한 大賢인데, 경주의 손씨들이 재차 이전의 선조들이 이미 허물을 고치고 간행하였던 『경절공실기』를 마음대로 하여 말씀을 침노하니, 사문과 유림의 변괴로서 멀리 떨어진 자신들이 보기에도 손씨들의 잘못이 극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였다.
김산향교 측은 ‘淵源’의 두 글자는 道統을 전수했다는 중대한 글자로서 외삼촌과 조카의 매우 정답고 고분한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는 옳지 않으며, ‘就學’이라는 것도 옳지 않고 ‘義方’이라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전의 실기에 서술되어 있던 ‘의방’이라는 구절을 지운 것에 대하여 비판한 것이다. 더하여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보다 퇴계 이황이 손중돈이 살던 시절과 가깝기에 틀림없이 그 학문의 정도가 얕고 깊은지를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중한 이황이 ‘연원’이라는 글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깊은 고찰을 한 결과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퇴계가 지은 이언적의 행장 중에도 한마디도 끌어다 썼다거나, 위에서 받은 바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正祖의 親筆 祭文에서도 같이 말하여 師承이 있지 않다고 하면서, 이와 같이 증거가 분명하고, 정확한데 손씨가 사사로이 과장 되게 사실이 아닌 말을 간행하여 내고, 사적인 안면이 있는 집안의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유포하고, 감히 牌를 내어서 말하기를 퇴계가 손수 바르게 한 판을 깨자고 한다고 성토하였다. 그러면서 그 實記의 판목을 파기하고 엄한 말로써 준엄하게 꾸짖어 조상을 더럽히고, 도통을 어지럽힌 죄를 알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손씨들이 주장하는 이씨 집안에서 나왔다는 문건은 필히 보잘 것 없어서 벽지로 쓰려던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하였다.
나아가 진성이씨 삼인이 손씨들에 붙어서 퇴계 선생의 말을 반박하고 있으니 그들이 진정 퇴계의 후손인지 반문하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손씨들이 잘못한 것이 명백하니 한 목소리로 함께 성토하여 유림의 밖으로 물리치면 다행이겠다. 즉 손씨들의 잘못을 성토하며 그들을 儒案에서 삭적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자료적 가치
이 통문 20세기 초반 영남의 3대 시비 가운데 하나인 손이시비와 관련한 것이다. 시비에 대한 김천 김산향교 회중의 의견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경주지역 손이시비의 전말」,『민족문화논총』42,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9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