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5월 25일 安東의 儒會에서 玉山書院으로 屛虎是非와 관련된 일이 해결되었음을 알려온 통문
1888년 5월 25일 安東의 幼學 李秀憼외 109명이 玉山書院으로 屛虎是非와 관련된 일이 해결되었음을 알려온 통문이다.
통문에서는 하늘의 도와 마찬가지로 斯文에서도 다시 번성하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안동에서는 70년이 지나도록 屛山書院과 廬江書院으로 대표되는 소위 병호시비가 치열히 전개되어 왔는 것은 영남에 불행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앞서 父老들이 시비를 조정하기 위한 의논을 수차례 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때에 옥산서원에서 문제를 의논하는 회합을 먼저 제안하여 분쟁을 해결하도록 통하게 하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옥산서원의 이러한 제안은 안동지역 유생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이번에 향촌의 일로 정해진 날에 도모하지 않았지만 여러 의견이 준발하였다. 다함께 옛날의 혐의를 버리고 나아가 이전의 좋았던 때로 능히 나아가자고 하였다. 이것은 비단 우리들만의 경사는 아니며 우르러 도내 여러 군자들도 같은 마음으로 愛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사이에 같거나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이에 연명하여 알리니, 업드려 원하건대 여러분께서 살펴 헤아려 특별히 보아주신다면 다행이겠다고 하였다.
본 통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분쟁의 당사자였던 안동지역 병파와 호파의 대표적 가문 인사들이 대부분 서명하였다는 것이다. 통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전에 여러차례 보합의 노력이 있었지만 모두 성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들의 의견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많은 인사들이 연명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연명한 110명의 인사들은 韓山李·全州柳·義城金·豐山金·河回柳·眞城李·安東權·載寧李氏 등으로 당시 안동지역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가문들이었다. 즉 병파와 호파를 대표하는 가문이었던 것이다. 병호시비 당시 병파의 입장을 정리한『廬江志』나 호파의 입장을 정리한『廬江顚末』에서 확인되는 병파로 분류되는 가문은 光山金·潘南朴·宣城金·順興安·安東權·延安李·仁同張·全義李·眞城李·晉州姜·晉州鄭·豐山柳·興陽李·豐山金氏 등으로 이 가운데 진성이, 풍산류, 진주정, 풍산김, 진주강, 전의이씨 등이 핵심가문이다. 호파는 고성이·안동권·안동김·재령이·전주류·진성이·의성김·한산이·연안이씨가 확인되는데, 의성김, 전주류, 진성이, 한산이씨 등을 핵심가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문들의 인사들이 연명하여 오랜 기간 이어온 시비를 끝냈으니 자신들의 결정을 특별히 헤아려 달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경주의 옥산서원에서 회합을 제안하여 사안이 원활하게 풀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옥산서원이 안동지역 사림들에게 영향을 줄만큼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 大院君의 院祠 훼철령으로 영남 내에서 존치된 서원은 극히 일부였으며, 그 가운데 陶山書院과 옥산서원이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그것은 1884년 복제개혁반대만인소를 주관하였던 곳이 옥산서원 유생들이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경주지역 사족들 특히 驪州李氏와 慶州孫氏는 안동지역의 대표적 가문들과 통혼이 활발하였다.
그렇기에 병호시비가 심화될수록 그들과 연계된 안동과 타읍의 가문들도 영향을 받아서 병파와 호파로 양분되어 대립했던 것이다. 통문에서 말한 영남의 불행이라는 것을 바로 이러한 분열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병호시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다는 것은 반대로 그들에게도 그만큼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옥산서원에서 병파와 호파의 화해를 제안했을 때 안동지역에서도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외에도 당시 국내외적 혼란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영남학파의 본산을 자부하는 안동지역 사림들의 분열은 자신들에게도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료적 가치
이 통문은 19세기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안동 병호시비의 결론에 대하여 추정할 수 자료이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경주지역 손이시비의 전말」, 『민족문화논총』42,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9
「조선후기 향전을 통해 본 양반층의 친족, 혼인 -안동의 병호시비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81, 한상우,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3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