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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유림(儒林) 문보(文報)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C.1905.0000-20170630.Y175010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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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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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첩보
내용분류: 정치/행정-보고-첩보
작성주체 옥산서원 유림, 군관
작성시기 1905
형태사항 크기: 89.4 X 89.4
장정: 점련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안내정보

1905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유림(儒林) 문보(文報)
1905년 5월 옥산서원 유림이 경주군수에게 강당인 구인당의 화재 사실을 보고하는 문보이다. 경주부윤이 아닌 경주군수로 칭한 것으로 보아서 19세기 말에 시행되었던 23부제로의 관제개편이후로 판단된다. 그렇기에 을사년은 1905년이 된다. 본문을 보면 옥산서원에서 묘우를 중수하는 일로 위판을 구인당 북쪽 상방에 임시로 이안했었는데, 중수가 끝나서 다시 5월 26일에 환안하고자 했다. 그런데 5월 18일에 남쪽 상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강당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이런 강당의 화재는 1839년에도 있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신구 사액현판과 어제제문판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에 옥산서원에서는 전례에 의거하여 옥산서원의 화재 사실을 경주군수에게 보고하고, 아울러 군수는 경상도 관찰사게 전달하여, 관찰사가 조정에 해당 사실을 전하는 것이 고사라고 했다. 결국 화재로 서원의 환안례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가운데 경주군수는 제음에서 환안례는 계획대로 행하라고 판결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9세기 초 경주 옥산서원 강당 중건과 위상변화 」,『한국학연구』, 이병훈,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5玉山書院 儒林이 慶州郡守에게 강당인 求仁堂의 화재 사실을 보고하는 文報이다.
1905년 5월 玉山書院 儒林이 慶州郡守에게 강당인 求仁堂의 화재 사실을 보고하는 文報이다. 본문을 보면 옥산서원의 묘우를 중수하는 일로 위판을 구인당의 북쪽 上房에 移安해 두었는데, 건물의 공사가 다되어서 5월 26일에 還安하고자 했다. 그런데 5월 18일 술시에 남쪽 상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다섯 기둥 가운데 2개 기둥만이 남았다. 다행히 新舊 宣額板과 御製 祭文板은 손상이 없이 온전히 보존되었다고 한다. 또한 1839년에 화재를 입은 강당이 이번에 또 화재를 당하였다고 알렸다. 아울러 서원에서 관에 보고하고, 관에서 감영에 보고하면 감영에서는 조정에 上達하는 것이 서원에 전해오는 故事라고 하였다. 그래서 서원의 유생을 보내어 변고를 알린다고 했다. 이에 서원 강당의 실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하며 마땅히 제사는 이어서 행할 일이라고 했다. 즉 불이 나서 경황이 없지만 계획대로 26일에 환안을 하라고 했던 것이다.
자료적 가치
이 자료는 옥산서원 강당인 구인당의 화재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구인당은 1839년 화재로 소실되어 중건하였는데, 건립이래로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1905년에 화재를 당하여 전체의 절반 이상이 탔던 것이다. 결국 현재의 옥산서원 강당은 1905년 새로 중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9세기 초 경주 옥산서원 강당 중건과 위상변화 」,『한국학연구』, 이병훈,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玉山書院儒林文報
右文爲文報事以本院廟宇重修事移 安位板于求仁堂北上房而僝功告訖還 安在今卄六矣典守不謹今月十八日戌時▣(南)上房僅僅救五架之二架而新舊
宣額板 御製祭文板幸無傷完保然靜謐宮墻灰燼溢目驚心省災不覺罔措如何再去己亥之災玆堂也院報于 官官報于 營至有上達 朝家之擧昭載院來故事玆
遣儒生告變伏願 城主閤下以慕賢衛道之心量裁之千萬祈懇之至
照驗施行須至文呈者
右文呈
郡官
乙巳五月日 權




院堂失火聞
甚驚向當本
係祀 府向事
二十日
禮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