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유림(儒林) 문보(文報)
1905년 5월 옥산서원 유림이 경주군수에게 강당인 구인당의 화재 사실을 보고하는 문보이다.
경주부윤이 아닌 경주군수로 칭한 것으로 보아서 19세기 말에 시행되었던 23부제로의 관제개편이후로 판단된다. 그렇기에 을사년은 1905년이 된다.
본문을 보면 옥산서원에서 묘우를 중수하는 일로 위판을 구인당 북쪽 상방에 임시로 이안했었는데, 중수가 끝나서 다시 5월 26일에 환안하고자 했다. 그런데 5월 18일에 남쪽 상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강당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이런 강당의 화재는 1839년에도 있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신구 사액현판과 어제제문판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에 옥산서원에서는 전례에 의거하여 옥산서원의 화재 사실을 경주군수에게 보고하고, 아울러 군수는 경상도 관찰사게 전달하여, 관찰사가 조정에 해당 사실을 전하는 것이 고사라고 했다. 결국 화재로 서원의 환안례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가운데 경주군수는 제음에서 환안례는 계획대로 행하라고 판결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19세기 초 경주 옥산서원 강당 중건과 위상변화 」,『한국학연구』, 이병훈,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