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2년 경상도(慶尙道) 관찰사겸순찰사(觀察使兼巡察使) 관문(關文)
1602년 3월 11일에 경상도 관찰사겸순찰사가 경주에 살고 있는 김윤택과 김의충 등의 말에 의거하여 비 소행과 노 억춘 등을 옥산서원에 가속시켜 사환하도록하고, 매 계절마다 감옥의 기록에 의거하여 행하도록 경주부윤에게 보낸 관문이다.
관문은 동등한 관부 상호간이나 상급관아에서 하급 관아로 보내는 문서 양식이다. 1602년 당시의 경상도관찰사인 이시발(1569~1625)은 1601년 9월부터 1604년 9월까지 재임하였다. 일반적으로 2년의 임기였지만 전쟁 후의 수습책으로 특별히 3년 동안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이전에 대구도호부사를 겸직하였지만, 이시발 감사 때에는 감영이 폐지되면서 대구도호부사 겸직도 해제 되었다. 그리하여 순영체제하에서 관찰사겸순찰사로 겸직했던 것이다. 경상도 관찰사는 종2품의 품계를 가졌다. 경주부윤 역시 경상도의 계수관으로서 종2품의 품계였다. 이처럼 관찰사와 부윤의 품계는 같았지만 감영이 상위 기관이었기 때문에 관문을 발급한 것이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17~18세기 경주 옥산서원의 토지재원과 그 운영」, 『태동고전연구』16,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1999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