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69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사림(士林) 이현국(李鉉國) 등 상서(上書)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B.1769.0000-20170630.Y1750107007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내용분류: 국왕/왕실-보고-상서
작성주체 옥산서원 사림, 순상
작성시기 1769
형태사항 크기: 77.5 X 62.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안내정보

1769년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사림(士林) 이현국(李鉉國) 등 상서(上書)
1769년 12월 19일 경주 옥산서원 사림 이현국 외 11명은 홍문관에서 대여를 요청한 『주자대전』과 『주자어류』두 질에 대하여 서적의 보호를 위하여 내어주기 어려우니 순상이 관문을 보내어 서적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상서이다. 상서에 따르면 홍문관에서 위로 올려 보내길 요청한 『주자대전』(전95권)과 『주자어류』(전75권)는 『고왕록』을 살펴보니 1577년에 선사된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200여 년 동안 한권도 서실되지 않은 완질본이었다. 이에 옥산서원 사림들은 서울까지 먼 길을 옮기는 가운데 혹 상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이를 반대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홍문관에서 요구하는 것은 곧 국왕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막무가내로 반대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전하는 것이 아닌 감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의견이 잘 전달되길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에 감사는 이 책이 임란이전의 구본으로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정리상 그러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홍문관의 학사들 또한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많은 선비의 말이 이와 같다면 이것은 십분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니 애석해 하는 뜻을 홍문관에 전달하겠다고 답변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경주 옥산서원의 장서 수집 및 관리 실태를 통해본 도서관적 기능」,『한국민족문화』58, 이병훈,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769년 12월 19일 慶州 玉山書院 士林 李鉉國 외 11명은 弘文館에서 대여를 요청한 『朱子大全』과 『朱子語類』두 질에 대하여 서적의 보호를 위하여 내어주기 어려우니 巡相이 關文을 보내어 서적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上書
1769년 12월 19일 慶州 玉山書院 士林 李鉉國 외 11명은 弘文館에서 대여를 요청한 『朱子大全』과 『朱子語類』두 질에 대하여 서적의 보호를 위하여 내어주기 어려우니 巡相이 關文을 보내어 서적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上書이다. 옥산서원은 건립이래로 수백 년 동안 서적의 閪失없이 건립초에 하사받은 내사본과 지방관 및 개인, 문중으로부터 받은 많은 장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홍문관에서 요구하기 이전인 10 여 년 전에 다량의 서적이 서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옥산서원은 경주부윤의 완문과 서원 자체의 규정을 강화하여 서적의 반출을 철저히 막아왔다. 그러나 홍문관에서의 서적 대여는 이 상서에서 말하고 있던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에 經筵에 쓰일 서적과 校書館에서 간행에 참고할 서적을 전국적으로 수집하였다. 그 때 옥산서원에서는 사서오경(四書五經),『주자대전(朱子大全)』,『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소학언해(小學諺解)』, 사서언해본(四書諺解本) 등의 내사본을 上送하였다. 상서에 따르면 홍문관에서 위로 올려 보내길 요청한 『주자대전』(전95권)과 『주자어류』(전75권)는 『考往錄』을 살펴보니 1577년에 宣賜된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200여 년 동안 한권도 서실되지 않은 완질본이었다. 이에 옥산서원 사림들은 서울까지 먼 길을 옮기는 가운데 혹 상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이를 반대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홍문관에서 요구하는 것은 곧 국왕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막무가내로 반대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전하는 것이 아닌 감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의견이 잘 전달되길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에 감사는 이 책이 임란이전의 舊本으로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정리상 그러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홍문관의 학사들 또한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많은 선비의 말이 이와 같다면 이것은 십분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니 애석해 하는 뜻을 홍문관에 전달하겠다고 답변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상서는 18세기 후반 옥산서원의 서적 관리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경주 옥산서원의 장서 수집 및 관리 실태를 통해본 도서관적 기능」,『한국민족문화』58, 이병훈,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巡相公 座前
惶悚仰瀆于
巡相公閤下生等伏見本府下帖則以弘文館推納本院所藏朱子大全語類兩帙事自 營門行關上送
故生等取見院在考往錄則所藏兩帙果是亂前本而萬曆丁丑
宣賜者也一自奉修之後本邑儒生愛翫而寶藏之至今數百年之久而宛然如昨日卽出千里外輸送之際莫重
宣賜或有致傷閪失之患則大爲士林之所共慨惜日後奉推之事惟在 閤下處置中生等敢以區區懇
迫之私冒昧仰溷伏乞 閤下移書瀛館使之完璧千萬幸甚伏惟
下鑑 謹上刺
己丑十二月十九日慶州玉山書院士林李鉉國
李憲魯
孫鉉九
金鄯
李憲夔
李祖範
權相贇
徐思漸
鄭烷
權龜煥
孫雲九
辛烱
此冊旣是亂前
舊本則其所愛
惜人情同然瀛
館諸學士亦
豈無此心乎然多
士之言如此更當
以十分護惜之意貽書
館中也向事
二十四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