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19년(1564)부터 광무 3년(1899)까지의 경상도 관찰사 명단인 도선생안(道先生案)
자료의 내용
선생안(先生案) 내지 관안(官案)은 도(道)・부(府)・목(牧)・군(郡)・현(縣)에 역대로 부임과 교체된 지방관의 성명・입사성분(入仕成分)・재임기간・교체사유・치적 등을 간략히 기록한 명부이다. 이러한 선생안을 작성하는 배경에는 부임해 오는 수령에게 선정과 악정(惡政)을 분별할 수 있게 하는 교훈의 성격과 권과(勸課)의 규범으로 삼고자 함에 있었다.
관찰사는 종이품(從二品) 문관(文官)으로 도내의 모든 정사를 관찰하여 외관(外官) 출척, 관곡(官穀) 감독, 민생안정과 유이민의 안집, 조세・공부(貢賦) 수송과 권농(勸農), 흥학(興學) 및 교화 임무, 사법문제, 군사행정 등 모든 통치행정 업무를 총괄책임자이다.
경상도 관찰사는 고려 문종 32년(1078) 이제원(李齊元) 도부서사(都府署使)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관찰사라는 명칭은 세조 11년(1465)에 사용되었다. 경상도 감영은 고려이래 조선 태종초까지는 경주에 태종 후반 상주로 이전했고 임란 이후 대구로 옮기면서 감사 직제가 2년의 솔권겸부사(率眷兼府使)의 유영(留營)체제를 확립했으나 행영(行營)과 유영체제를 반복하다가 18세기부터 유영체제로 통일되어 갑오개혁까지 유지되었다.
함창향교에는 선생안은 도선생안(道先生案) 1책, 함창현선생안 1책, 함창부임록(咸昌赴任錄) 1책과 모두 3책이 현전하고 있다. 본 자료는 3책 중 도선생안으로 기재된 것으로 명종 19년(1564) 2월 이우민(李友閔)부터 광무 3년(1899) 2월 김직현(金稷鉉-경상북도 관찰사)까지 290명의 경상도 관찰사 명단이다. 재임한 인물은 10명이다. 본 좌목에는 입사성분・성명・재임기간・교체사유・퇴임 후 진로 등을 수록하고 있다.
본 자료에는 출사성분(出仕成分)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경상도 관찰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비교적 우수한 성적의 문과급제 출신들이 파견되었다.
관찰사 제수 당시 관직 기록된 66명의 인사를 통해 출사성분을 어느 정도 유출할 수 있다. 이를 내외직으로 구분해 보면 내직 제수자 45명, 외직 제수자 21명으로 내직에서 많이 제수됨을 알 수 있다. 관직의 품계는 정2품에서 종4품까지 다양하다. 우선 내직에는 호조판서(戶判) 2명・대사헌(大司憲) 1명・참판(參判) 5명[형조참판(刑參) 2명・호조참판(戶參) 1명・예조참판(禮參) 1명・참판(參判) 1명]・부제학(副學) 1명・승지(承旨) 22명・좌승지(左丞) 1명・첨지(僉知) 4명・참의(參議) 5명[병조참의(兵議) 2명・예조참의(禮議) 1명・형조참의(刑議) 1명・호조참의(戶議) 1명]・판결사(判決) 1명・대간(大諫) 2명・응교(應敎) 1명이다. 이중 승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경상도 관찰사직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왕이 신임하는 인사를 제수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외직 제수자는 경기도 관찰사(畿伯) 1명・부윤(府尹) 4명[경주부윤(慶尹) 2명・광주부윤(廣尹) 2명]・우윤(右尹) 2명・광주목사(光牧) 1명・부사(府使) 13명[담양부사(潭陽府使) 1명・동래부사(東來府使) 2명・수원부사(水原府使) 4명・안동부사(安東府使) 4명・장단부사(長端府使) 1명・정평부사(定平府使) 1명] 이다.
경상도 관찰사의 임기는 법적으로 대구부사를 겸했을 때의 임기는 2년, 그렇지 않을 경우 1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규정된 임기가 있음에도 그 기간이 잘 지켜지지 않고 대부분 임기 만료 전에 빈번히 교체가 이루어졌음을 본 자료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교체사유는 체귀 103명[체귀(遆歸) 97명·체귀(遞歸) 6명], 체거(遆去) 22명, 졸(卒) 6명, 체부(遞付) 3명, 죄사(罪死) 1명・파귀(罷歸) 1명, 부상(父喪) 1명이다. 이처럼 경상도 관찰사의 교체 사유는 천관(遷官)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죄사된 자는 광해군 11년(1619)부터 광해군 13년(1621)간 재임한 정조(鄭造)로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폐모론(廢母論)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처형되었다. 파직자는 숙종 38년(1712) 6월부터 숙종 40년(1714) 6월까지 재직하던 이탄(李坦)은 밥상에 금육(禁肉)을 올린 과실 때문에 파직당했다.
이배의 기록이 있는 46명 가운데 내직으로 천관된 자는 38명 외관직으로 천관된 자는 8명 뿐으로 내직이 훨씬 많다. 내직 관직에는 영의정(領相) 4명, 우의정(右相) 6명, 판서(判書)[이조판서(吏判) 10명・예조판서(禮判) 2명・형조판서(刑判) 2명・판서 2명], 대사헌(大司憲) 3명, 참판(參判) 4명[참판 3명・이조참판(吏參) 1명], 대사간(大司諫) 2명, 이조참의(吏議) 1명, 제학(提學) 1명, 판결(判決) 1명 순이다.
외관직에는 감사 6명[경기감사(畿伯) 1명・평안감사(平安監司) 4명・함경감사(咸慶監司) 1명], 유수 3명[강화유수(江華留守) 1명・개성유수(開城留守) 2명] 이다.
천관(遷官) 인사 7명을 제외하면 전부 승진 내지 동일 품계로 옮겼다는 사실은 경상도 관찰사 직이 요직(要職)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우도 분리 시에는 좌감사(左監司) 1명, 우감사(右監司) 3명의 기록도 보인다.
자료적 가치
도선생안은 조선시대 경상도 관찰사의 전직(前職), 재임기간, 교체사유, 천관(遷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조선왕조실록,
「조선후기 경상감사고(상・중・하)」 『도협월보 21집~23집』, 장인진, 1980
『朝鮮時代 地方行政史』, 이수건, 民音社, 1989.
『尙州市史』, 상주시, 2010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