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의 내용
1793년에서 1867년까지 慶尙道 豊基郡 豊基鄕校에서 6회에 걸쳐 개최된 耆老宴의 참석자 명부다. ‘會話錄’이라는 제목으로 엮여져 있는데, 처음 명부가 만들어 진 후, 기로연이 개최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작성된 듯하다. 자료 가장 말미에는 ‘檀紀四三一九年丙寅十一月十日再結冊’이라 기재되어 있다. 이전까지 전해지던 명부를 1986년 11월 10일 새롭게 엮은 것으로 보인다. 1986년 당시 典校는 張鳳基가 맡고 있었다.
회화록은 ‘癸丑會話錄’, ‘戊申會話錄’, ‘丁巳會話錄’, ‘甲子會話錄’, ‘丙寅會話錄’, ‘丁卯會話錄’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회화록에는 기로연 참석자 명단, 당시의 풍기향교 校任, 기로연의 경위와 의의를 간략히 언급한 識가 수록되어 있다. 참석자 명단은 나이 순서대로 기재되어 있으며, 성명 아래에는 字와 출생 干支를 세주로 표시하였다. 그런데 참석자의 나이를 보면 70~80대의 노인도 있지만 20~30대의 젊은 유생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정 세대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노인층부터 청장년층까지 여러 연령대가 참여하여, 노인들과 會話를 나누고 연회를 즐기는 형태로 기로연이 개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회화록 말미에는 당시의 풍기향교 교임을 기재해 놓았는데, 풍기향교가 首任인 校長, 즉 都有司 1인, 副任인 掌議 1인, 齋任 2인 체제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서두의 ‘癸丑會話錄’은 1793년에 개최된 기로연 기록이다. 당시 校長, 즉 도유사는 朴成咸, 장의는 黃應緖, 재임은 蔡命赫·黃應緝이 맡고 있었다. 識에는 기로연이 10월에 개최되었으며, 그 인연을 돈독히 하고자 명부가 작성되었음을 언급해 놓았다. 1793년 기로연에는 모두 40명이 참석하였는데, 성씨별로는 李氏 13명, 黃氏 7명, 金氏·韓氏 각 3명, 郭氏·權氏 각 2명, 琴氏·南氏·朴氏·張氏·丁氏·趙氏·秦氏·蔡氏·河氏 각 1명 순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戊申會話錄’은 1848년의 기로연 기록이다. 당시 교장은 朴必興, 장의는 黃起源, 재임은 蔡周翰·黃潤千이 맡고 있었다. 識에 따르면 처음 모임이 있은 지로부터 50년이 지난 1848년 10월, 유생들이 다시 모임을 개최했다고 한다. 또한 예전 기록에 이어서 본 명부가 작성되었음을 밝혀 놓았다. 1848년 기로연에는 모두 22명이 참여하였으며, 성씨별로는 李氏·黃氏 각 8명, 金氏·蔡氏 각 2명, 朴氏·河氏 각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세 번째 ‘丁巳會話錄’은 1857년의 기로연 기록으로, 당시 교장은 李益彬이 맡고 있었다. 識에 따르면 처음 회화록이 작성된 후로부터 65년이 흘러 세 번째 모임을 개최하게 되었다며, 그 사이 세상이 많이 변했음에도 이런 모임이 이루어져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인연을 잊지 않기 위해 본 회화록을 작성한다고 하였다. 識는 윤6월 22일에 쓰여 진 것이다. 1857년 기로연에는 모두 12명이 참석하였는데, 성씨별로 나열하면 黃氏 7명, 朴氏 2명, 南氏·李氏 각 1명 순이다.
네 번째 ‘甲子會話錄’은 1864년의 기로연 개최 기록으로 당시 교장은 韓德鳳, 장의는 河必淸이 맡고 있었다. 7월에 쓰여 진 識에는 이 모임의 성격이 老人會이며, 어른을 섬기는 자리라고 언급해 놓았다. 1864년 기로연에는 모두 12명이 참석하였으며, 성씨별로 나열하면 黃氏 8명, 李氏 2명, 羅氏·南氏 각 1명 순이다.
다섯 번째 ‘丙寅會話錄’은 1866년 개최된 기로연 기록이다. 당시 교장은 黃中瓚, 장의는 黃之幹이 맡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識에서는 세상의 점점 퇴락해져서 養老의 풍습이 없어지고 있음을 한탄하였다. 그래서 이번 모임의 전통이 후대에 잘 계승되기를 당부해 놓았다. 1866년 기로연에는 모두 15명이 참석하였으며, 성씨별로 나열하면 黃氏 6명, 李氏·韓氏 각 4명, 南氏 1명 순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 ‘丁卯會話錄’은 1867년에 개최된 기로연 기록이다. 교임으로는 李馨淳과 黃卨漢이 기재되어 있는데, 풍기향교에 전해지는 ‘鄕校任案’에 따르면 당시 이형순은 도유사, 황설한은 장의를 맡고 있었음이 나타난다. 이 해의 회화록에는 識가 별도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기로연 참석자는 모두 18명으로 성씨별로 나열하면, 黃氏 8명, 李氏 4명, 金氏·韓氏 각 2명, 羅氏·南氏 각 1명 순이다.
이상 6회에 걸쳐 개최된 기로연 참석자는 모두 119명이다. 이들을 성씨별로 나열하면 黃氏 44명, 李氏 32명, 金氏 7명, 南氏 5명, 朴氏 4명, 蔡氏 3명, 郭氏·權氏·羅氏·河氏 각 2명, 琴氏·張氏·丁氏·趙氏·秦氏·洪氏 각 1명 순으로 나타난다. 후기로 갈수록 참여 성씨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 운영의 양상과 풍기군 지역 재지사족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으로 교육뿐만 아니라 교화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향교에서의 기로연·養老宴 개최였다. 기로연은 지역 士林 중 나이가 많은 인사를 초빙하고 연회를 베풀어, 향촌에서의 질서를 확인하는 자리다. 즉, 풍기향교에서의 기로연 개최는 교화를 담당하는 향교의 권위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한편, 기로연에 참석한 인사들은 18~19세기 풍기군 지역을 대표하던 재지사족 가문 출신이다. 기로연 참석 인사들의 성씨별 분포를 살펴보면, 황씨·이씨·김씨·남씨 등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이들 성씨들이 풍기군 지역을 대표했던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