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42년(1716) 작성된 함창향교(咸昌鄕校) 수임안(首任案)
자료의 내용
조선후기 향교는 교수(敎授)와 훈도(訓導) 등의 교관(敎官)이 폐지 된 이래 지방 양반들로 구성된 교임(校任)에 의해 운영되었다. 향교의 교임은 대체로 동재의 청금유생들 가운데서 수임(首任)인 도유사, 차임(次任)인 장의, 말임인 색장(유사・재유사・교임)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교임의 명칭과 직제는 지역마다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교장(校長)・장의(掌議)・색장(色掌)을 두었는데 남부지방에서는 수임을 도유사(都有司)로 명칭 했다. 도유사 선출은 대체로 봄의 석전제(釋奠祭) 종료 후 헌관(獻官)과 유림들이 천거로 수령에게 삼망(三望)하여 택임하는 방법을 취했고, 장의와 색장은 도유사의 천거로 삼망하고 관의 택임을 받는 형태를 따랐다. 특히 수임은 유림 중에서 연치가 있고 덕망을 갖추어 일반인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 선택된다. 그는 향교를 대표하면서 교임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함창향교도 이러한 방식을 따랐을 것으로 판단된다.
함창향교의 명칭과 직제는 수임(首任)은 상재(上齋)・도유사, 차임(次任)은 장의, 말임(末任)은 유사(有司)・재임(齋任)・재유사(齋有司) 등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본 자료는 바로 청금록 내 상재・도유사인 수임의 명부를 별도로 작성한 것이다.
현재 함창향교에 현전하는 수임록은 모두 3책인데 수임안(首任案)・수임전안(首任前案)・수임천안(首任薦案)의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다. 본 자료는 그 중 하나인 수임천안으로 효종 9년(1685)부터 숙종 42년(1716)까지 32년간의 명부이며, 등재 된 수임의 총 인원은 72명이다. 모두 12차례 걸쳐 입록이 이루어졌고, 좌목에는 성명・자(字)・간지・본관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해 두고 말미에는 교임명단이 있다.
이들을 성씨별로 나누어 분류하면 경주이씨・인천채씨 각 11명, 완산이씨・평산신씨 각 10명, 안동권씨 9명, 의령남씨・진주류씨 각 3명, 감천全氏・남양홍씨・청주정씨・파평윤씨・한양趙氏 각 2명, 김씨・동래鄭氏・부림홍씨・영해신씨・鄭氏・함양박씨・홍씨 각 1명 순이다.
이들 가운데 경주이씨, 인천채씨, 완산이씨, 평산신씨, 안동권씨 등의 가문의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으며 이들 가문이 함창향교를 중심으로 향촌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가문들이었다.
각 말미에 기재된 교임명단 중 관직 또는 관품을 표기해 두었는데 모두 26명이다. 이를 나열하면 목사(牧使) 1명・찰방(察訪) 1명・전적(典籍) 1명과 진사 12명・생원 11명이다.
한편 수록 인물 가운데 향안, 교안(校案), 청금록에도 중복 입록자들이 다수가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은 각기 문서가 독립적으로 작성·운영된 것이 아니라 모두 양반사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명부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본 수임안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함창향교의 인적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를 통해 당시 주도 가문을 파악할 수 있으며 다른 안(案)과 비교를 통해 향촌사회 내 사족의 동향과 향교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조선후기 함창지역에는 유력한 서원이 없었던 관계로 재지사족들은 향교를 중심으로 그 기반을 유지했음을 본 자료가 어느 정도 입증하고 있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韓國의 鄕校 硏究』, 강대민, 경성대출판부, 1992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尙州市史』, 상주시, 2010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