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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9년(1683)부터 숙종 24년(1698)까지 용궁향교(龍宮鄕校)에서 작성한 청금록(靑衿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G.1683.4790-20160630.Y16324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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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함창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작성시기 1683
형태사항 크기: X 32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3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예천 용궁향교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예천 용궁향교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안내정보

숙종 9년(1683)부터 숙종 24년(1698)까지 용궁향교(龍宮鄕校)에서 작성한 청금록(靑衿錄)
본 자료는 정조연간의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금록(靑衿錄)으로 총 108명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에는 용궁관유생성책록으로 내지에는 용궁관유생청금록(龍宮官儒生靑衿錄)으로 기재되어있고, 좌목에는 성명・조상・입격(入格)・재상(在喪)・개명・이거(移居)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해 두고 있디. 문서 말미에 작성 교임명단이 있다. 먼저 입록자 성씨를 살펴보면 안씨 17명, 이・전(全)씨 각 11명, 권・채씨 각 6명, 고・김・류각 5명, 장・정(鄭)씨 4명, 강・남・반씨 각 3명, 박・손・윤씨 각 2명, 금・문・신・조(曺)・홍씨 각 1명 순이다. 그리고 상단 우측이 탈락되어 확인되지 않는 미상이 14명이다. 본 자료에 나타나는 성씨는 기존 청금록에도 나타나지만 성씨가 확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여타 향교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 시기 향교의 향촌유림의 공동체적 내지 향촌자치제적 성격이 점차 감소되면서 그 만큼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은 입격 12명・충의(忠義) 14명・초관(哨官) 1명・참봉 1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율은 인조반정 이후 노론 전제정권에 따른 재지사족들의 중앙 관료 진출이 어려워지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본 자료는 18세기 후반 용궁의 재지사족을 망라하고 있고 말미에 수결과 색리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일종의 향안과 같은 성격의 사족들의 안(案)으로 볼 수 있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韓國의 鄕校 硏究』, 강대민, 경성대출판부, 1992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龍宮鄕校誌』, 용궁향교, 2004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숙종 9년(1683)부터 숙종 24년(1698)까지 용궁향교(龍宮鄕校)에서 작성한 청금록(靑衿錄)
자료의 내용
청금록(靑衿錄)은 조선후기 향교에 출입하던 양반사족인 청금유생을 기록한 명부이다. 청금유생은 향교에 출입하였던 양반사족의 명부로서 평민 또는 서얼들로 이루어졌던 교생(校生)과 대비되는 존재들로 교임과 함께 향교를 구성하는 중요한 인적 구성이자 운영 담당자였다. 이러한 교생과 청금유생의 분화, 즉 청금록이 작성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인조년간 교생고강의 실시와 과거응시 자격부여라는 2가지의 요인을 들 수 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교생의 수는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은 90명, 도호부(都護府)는 70명, 군(郡)은 50명, 현(縣)은 30명이며, 이는 조선후기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양반사족들은 군현의 등급에 따라 규정된 정액내의 교생, 즉 액내교생(額內校生)으로 향교에 입교하여 향교의 운영에 관여하였다. 그에 반해 군역면제와 각종특권을 받을 목적으로 비양반층의 정원 외의 입교 또한 이루어졌으며 이를 액외교생(額外校生)이라 하였다.
현재 용궁향교에 현전하는 청금록은 모두 3책으로 그 명칭을 청금록 2책과 용궁관유생성책(龍宮官儒生成冊) 2책이 있다. 본 자료는 후자로 작성 연대는 정조연간의 것으로 추정되며, 2차례 총 108명이 수록되어 있다. 중복없이 매번 새로운 인물이 입록 되어 있으며 법적 인원을 초과인 이유는 교안(校案)처럼 청금록의 입록에 있어서도 정액(定額)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표제에는 용궁관유생성책록으로 내지에는 용궁관유생청금록(龍宮官儒生靑衿錄)으로 기재되어있고, 좌목에는 성명・조상・입격(入格)・재상(在喪)・개명・이거(移居)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해 두고 있디. 문서 말미에 작성 교임명단이 있다. 먼저 입록자 성씨를 살펴보면 안씨 17명, 이・전(全)씨 각 11명, 권・채씨 각 6명, 고・김・류각 5명, 장・정(鄭)씨 4명, 강・남・반씨 각 3명, 박・손・윤씨 각 2명, 금・문・신・조(曺)・홍씨 각 1명순이다. 그리고 상단 우측이 탈락되어 확인되지 않는 미상이 14명이다. 본관이 기입되어 있지 않아 성관을 명확하지 않지만 축산승람(竺山勝覽)에 의하면 상위 입록 성씨들은 다음과 같다. 안씨는 순흥, 이씨는 성주여주, 전씨(全氏)는 축산(竺山), 권씨는 안동, 채씨는 인천, 고씨는 개성, 류씨는 진주 등으로 파악되었다. 이들이 18세 후반 용궁향교를 출입하던 교생들의 주요 가문들이다. 본 자료에 나타나는 성씨는 기존 청금록에도 나타나지만 성씨가 확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여타 향교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 시기 향교의 향촌유림의 공동체적 내지 향촌자치제적 성격이 점차 감소되면서 그 만큼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은 입격 12명・충의(忠義) 14명・초관(哨官) 1명・참봉 1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율은 인조반정 이후 노론 전제정권에 따른 재지사족들의 중앙 관료 진출이 어려워지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특이하게 조상을 밝혀놓은 입록자들이 있는데 그 대상은 문헌공후예 즉 안향후손 11명, 태종 외손 4명, 청백리후예 3명이다. 전반적으로 순흥안씨가 두드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순흥안씨들은 고려시대 문과급제 후 좌정승을 역임한 안문개(安文凱 1333~1389)의 후손들이다. 14세기 말 조선왕조개창에 반대하여 유배로 인해 이 지역으로 낙남(落南)한 이래 후손들이 경상도 예천 등지에 세거하게 되었다. 좌목 말미에는 별감(別監) 안덕무(安德懋), 재임(齋任) 안후징(安厚徵)・장취미(張聚美)・채성징(蔡星徵), 색리(色吏) 김선걸(金先傑)로 끝을 맺고 있다. 본 자료는 18세기 후반 용궁의 재지사족을 망라하고 있고 말미에 수결과 색리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일종의 향안과 같은 성격의 사족들의 안(案)으로 볼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본 청금록은 18세기 후반 용궁향교의 인적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를 통해 당시 청금유생의 입록현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다른 안(案)과 비교를 통해 용궁의 향촌사회 내 사족의 동향과 향교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청금록에 비교해 성씨들이 확대되는 현상도 볼 수 있다 특히 조상이 누구인지 밝히고 있는 점과 대표적인 가문인 순흥안씨의 향촌 내 영향력을 짐작하게 해준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韓國의 鄕校 硏究』, 강대민, 경성대출판부, 1992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龍宮鄕校誌』, 용궁향교, 2004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龍宮官儒生成冊
龍宮官儒生靑衿錄
蔡起業【忠義入格】
安善徵【文獻公後裔入格】
蔡起先【忠義入格】
鄭烶【在喪】
權抗
蔡起世【忠義入格】
▣▣仁【忠義】
▣▣挺【入格】
張希孟
柳景長【年五十一】
李啓漢【松安▣後裔】
李元發【忠義】
全任耈【移居尙州入格】
全五倫【在喪入格】
▣▣▣
▣▣約【淸白吏後裔在喪】
安泰徵【文獻公後裔】
安得徵【文獻公後裔】
安夏徵【文獻公後裔輪講入格】
鄭堯右
張孝甲
▣聚美
▣▣徵
▣▣相
安崇一
蔡起宗【忠義】
權以煜
曺信明
金用埴
南紀夏【忠義口傳出耒事上京未還】
▣▣常【在喪】
安▣明【文獻公後裔】
權掄【移居安東】
高世材
孫宗遠【移居尙州】
安都徵【文獻公後裔入格移居咸昌】
全洽【在喪】
申光夏【入格】
▣▣耈【入格移居尙州】
▣▣耈【入格移居尙州】
安處弘【初名處義淸白吏後裔】
全世長
潘拭【璿源殿參奉】
高友謙
金堅
李萬齡【太宗大王外裔】
▣▣夏【忠義】
▣▣葉【太宗大王外裔】
全世聖
安國徵【淸白吏後裔初名轙】
全世衡
安徵五【文獻公後裔】
全世胤
【在喪】
安▣五【文獻公後裔】
▣一徵
安章五【文獻公後裔】
金後宗【反武時任哨官】
金世望
姜渭老【移居尙州】
全五福【在喪】
高命世【入格】
▣▣壽
▣恬
【文獻公後裔】
高得說
高義謙
潘格
金世允
李萬實【太宗大王外裔】
▣五星
權恒
李翱【太宗大王外裔】
全五章
朴全華
李時馦【忠義】
李時馥【忠義】
全五瑞
權宗夏
李必允【忠義】
柳世賓
李德後【忠義】
張望允
蔡星徵【忠義】
琴以柱【在喪】
安漢宗【文獻公後裔】
朴思華【發狂失性】
柳景淵
姜南冕
蔡文徵【在喪】
鄭堯老
安漢石【文獻公後裔入格】
文奎
安擇善
安諒【文獻公後裔】
柳時泰
柳世弼
李元挺【忠義】
李得杓
孫東最
姜周翊
洪道行
權元吉
全以悅
新入
尹墇
鄭堯衡
尹最
南天覺
南金貴
安鼎石【文獻公後裔】

別監安德懋
齋任安厚徵
張聚美
蔡星徵
色吏金先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