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3년부터 1831년까지 역임한 321명의 별감의 명단을 작성한 〈別監鄕任錄〉
자료의 내용
1683년부터 1831년까지 역임한 321명의 별감의 명단을 작성한 〈別監鄕任錄〉이다. 성명과 任差년의 간지만이 기록되어 있고, 별도의 附記는 없지만 改名, 奉聖數者는 註記하고 있다. 주된 姓氏는 동일하게 작성된 〈座首鄕任錄〉과 유사하며, 金·張·李·卞·鄭·禹·朴·權·申·康·玄·崔氏 등이 있다. 비안의 별감은 때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통상 2명이 함께 맡거나 1명이 짧은 기간동안 체직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향청의 좌수와 별감은 지역 사족 중에서 선발되어 위로 수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동시에 아래로 鄕吏를 단속하고 향촌 사회를 규찰하며 사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7~8세기에 儒·鄕이 분리되면서 향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족들이 향임직 수행을 기피한 반면, 서얼·요호부민 등 위상이 낮은 새로운 세력이 좌수·별감직을 담당한 결과 향임의 격이 낮아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본 문서에 드러나는 인물들에 관해서는 별도의 부기사항이 없어 직접적인 비교를 통한 신분이나 관직 등에 관한 사항을 알 수 없지만, 좌수안의 인물들과 많은 수가 중복되고, 시간이 경과하고도 그러한 양상은 지속되는 것으로 보아 향임의 격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가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비안향교에 소장된 여타의 명단, 향안이나 유안, 청금록, 직임 관계류 등에서도 비안현의 주도적 성관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 다른 문서에서 드러나는 바와 마찬가지로 17세기 이후의 비안현의 주도성관은 크게 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기존의 성관에서 소수의 새로운 성관이 지역사회의 운영, 관리에 참여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겠다. 17세기 중후반의 비안현, 비안향교와 관계된 각종 명부에 입록되는 이들의 성씨별 분포를 보면 김·장·우·정·변·박·이·권·남·곽·임씨 등이 주를 이루었으며 특히 김씨와 장씨가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후반에 이르면서 위의 성씨가 그대로 존속하면서 한편으로 구·신·진·강·공·최·오·손·강·류·신 등 11개의 새로운 성씨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임진·병자의 兩亂과 당쟁의 격화, 그리고 상속제도 및 혼인관습 등이 17세기 중반부터 현격하게 달리지는데서 말미암았다고 보여진다. 다만 이들 새로운 성씨는 그 數에 있어서나 존속의 견고성에도 매우 취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이는 17세기 후반 이후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양반층의 잦은 이주로 족적기반이 그만큼 약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료적 가치
사족 중 별감이라는 향임을 맡은 이들의 인명과 체임년 간지가 기록된 일종의 인사기록 문서로서 약 150여 년간의 별감 321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비교적 긴 기간 동안에 작성된 것으로 향임들의 인적 구성의 양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비안향교에 소장된 같은 기간 작성된 〈좌수향임록〉과 더불어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향임들의 성관을 살펴볼 수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朝鮮後期 鄕校硏究』, 尹熙勉, 일조각, 1989.
『朝鮮時代嶺南書院資料集成』, 李樹健 外,, 國史編纂委員會, 1999.
1차 작성자 : 윤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