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7년(1731)부터 영조 16년(1741)까지 함창향교(咸昌鄕校)에서 작성한 청금록(靑衿錄)
자료의 내용
청금록(靑衿錄)은 조선후기 향교에 출입하던 양반사족인 청금유생을 기록한 명부이다. 청금유생은 향교에 출입하였던 양반사족의 명부로서 평민 또는 서얼들로 이루어졌던 교생(校生)과 대비되는 존재들로 교임과 함께 향교를 구성하는 중요한 인적 구성이자 운영 담당자였다. 이러한 교생과 청금유생의 분화, 즉 청금록이 작성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인조년간 교생고강의 실시와 과거응시 자격부여라는 2가지의 요인을 들 수 있다.
현재 함창향교에 현전하는 청금록은 모두 5책이다.
본 자료는 5책 가운데 하나로 영조 7년(1731)부터 영조 16년(1741)까지 7회에 걸쳐 117명이 수록된 청금록이다. 표제에는 청금록으로 되어있고, 본 좌목에는 성명・간지(干支)・본관・관직・개명(改名)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해 두고 있고 말미에 교임명단이 있다.
모두 7차례 가록(加錄)되어 있으며 중복 없이 매번 새로운 인물이 입록 되어 있다. 이는 양반사족의 명부로 청금록과 동일한 성격의 사족명부인 교안(校案) 처럼 정액(定額)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첫번째 좌목은 신해(辛亥)(1731) 12월 초4일의 것으로 51명의 입록자 성관(姓貫)을 살펴보면, 평산신씨 14명・인천채씨 12명・완산이씨 10명・의령남씨 7명・진주류씨 4명・안동권씨 3명・백천조씨 1명 순이다. 추록은 3명으로 기재되어 있고, 좌목 말미에는 공사원(公事員) 류(柳)·신(申), 회원(會員) 권(權)·이(李)·신(申)으로 끝을 맺고 있다.
두번째, 세번째 좌목은 임자(壬子)(1732) 8월 초2일의 것과 을묘(乙卯)(1735) 2월 초6일의 것으로 각14명과 1명이 입록되어 있다. 전자의 입록자 성관을 살펴보면, 평산신씨 7명・인천채씨 5명・진주류씨 2명 순이며, 좌목 말미에는 상재(上齋) 신(申)・장의(掌議) 채(蔡)・유사(有司) 남(南)으로 끝을 맺고 있다. 후자는 진주류씨 1명뿐이며, 좌목 말미에는 도유사(都有司) 채(蔡), 장의(掌議) 이(李)・재임(齋任) 남(南)이다.
네번째 좌목은 정사(丁巳)(1737) 9월 21일의 것으로 30명의 입록자 성관을 살펴보면, 완산이씨 9명・인천채씨 7명・평산신씨 7명・백천조씨 2명・안동권씨 1명・창녕성씨 1명 순이다. 좌목 말미에는 회원(會員) 유학(幼學) 이(李)・前正卽 남(南)·생원(生員) 남(南)·이(李)·前군수(郡守) 이(李)·유학(幼學) 신(申)·이(李)·신(申), 도유사(都有司) 신(申), 장의(掌議) 이(李)로 끝을 맺고 있다.
다섯 번째와 여섯번째 좌목은 무오(戊午)(1738) 8월 초6일 것과 경신(庚申)(1740) 6월 16일의 것으로 각10명과 1명이 입록하고 있다. 전자의 입록자 성관을 살펴보면, 평산신씨 4명・진주류씨 3명・의령남씨 2명・선성이씨 1명 순으로 좌목 말미에는 도유사(都有司) 이(李), 장의(掌議) 남(南), 재임(齋任) 류(柳)이다. 후자는 예안이씨 1명 뿐이고, 좌목 말미에는 회원(會員) 신(申)·이(李)·채(蔡)·신(申)·채(蔡)로 끝을 맺고 있다.
일곱번째 좌목은 신유(辛酉)(1741) 정월 15일의 것으로 10명의 입록자 성관을 살펴보면, 평산신씨 3명 인천채씨 2명・의령남씨 2명・진주류씨 2명・완산이씨 1명순 이며, 좌목 말미에는 도유사(都有司) 신(申), 장의(掌議) 성(成), 재임(齋任) 이(李)로 끝을 맺고 있다.
입록자 총 117명의 성관비율은 평산신씨 35명・인천채씨 27명・완산이씨 20명・의령남씨 14명・진주류씨 11명・안동권씨 4명・백천조씨 3명・선성이씨 1명・예안이씨 1명・창녕성씨 1명으로 평산신씨, 인천채씨, 완산이씨 가문의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청금록과 교임록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편 이들 성씨들을 향안과 교안에도 중복 입록자들이 다수가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은 청금록과 향안 및 교안이 독립적으로 작성·운영된 것이 아니라 모두 양반사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명부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당시 향교에 출입하였던 청금유생은 향교 운영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향안의 운영에도 동시에 참여하였던 함창의 재지사족층 이었다.
자료적 가치
함창향교 청금록은 17세기 이후 함창향교의 인적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를 통해 당시 청금유생의 입록 뿐 아니라 다른 안(案)과 비교를 통해 함창의 향촌사회 내 사족의 동향과 향교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韓國의鄕校硏究』, 강대민, 경성대출판부, 1992
『朝鮮後期鄕校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尙州市史』, 상주시, 2010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