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6일 慶尙北道 月城郡 소재 玉山書院에서 경주 지역 내 13개 門中에 享禮 일자를 통보하기 위해 발급한 回文
자료의 내용
1945년 8월 16일 慶尙北道 慶州郡 소재 玉山書院에서 享禮 일자 통보를 위해, 경주 지역 13개 門中에 발급한 回文이다. 회문은 각종 의례·행사·회의 개최 등을 다른 문중이나 유관 기관에 통보하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를 뜻한다. 회문은 복수의 수급처가 돌려 보는 문서로, 通文과는 달리 주로 鄕內에 발급되었다.
옥산서원 측은 본 회문에서 本院의 享禮가 1945년 8월 30일에 개최되니, 僉尊께서 기한 내에 참석해 주기를 간략히 요청해 놓았다. 8월 30일은 下丁日에 해당된다. 발급 담당자는 옥산서원 齋任 李이며, 그 아래에는 署押이 기재되어 있다. 李는 1944년 11월 옥산서원 재임에 임명된 李建德으로 추정된다. 일자 다음에는 회문이 돌려진 13개 문중이 나열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板橋의 洪氏 문중, 霞上의 李氏 문중, 霞谷의 鄭氏 문중, 斗流의 權氏 문중, 玉山의 李氏 문중, 山垈의 李氏 문중, 楊月의 李氏 문중, 洪川의 權氏 문중, 六通의 黃氏 문중, 元堂의 金氏 문중, 草堤의 孫氏 문중, 沙洞의 金氏 문중, 杏村의 李氏 문중이 회문을 수급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각 문중 아래에는 수급을 확인하는 署押과 날인이 있다. 서압은 네 군데이며, 현대 도장으로 일곱 군데 날인이 확인되는데, 한 곳은 비어 있다.
자료적 가치
서원의 전통 향례 계승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옥산서원 측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회문을 발급하여 향례에 참여하는 문중에게 실시 일자를 통보해 왔다. 이러한 전통이 고수되었기에 현대에도 옥산서원 향례의 원형이 계승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 회문이 발급된 문중은 조선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옥산서원 향례에 참여했던 가문이다. 옥산서원이 경주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었던 만큼, 옥산서원 향례에는 경주 지역의 여러 가문이 참여하였다. 현재까지 옥산서원에는 이러한 회문이 다수 소장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옥산서원의 사회적 위치를 짐작 할 수 있다.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