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2월 15일 慶尙北道 慶州郡 玉山書院이 경주 지역 내 13개 門中에 享禮 일자를 통보하기 위하여 발급한 回文
자료의 내용
1939년 2월 15일 慶尙北道 慶州郡 소재 玉山書院에서 享禮 일자 통보를 위해, 경주 지역 13개 門中에 발급한 回文이다. 회문은 문중·기관 등이 각종 의례·행사·회의 개최 등을 다른 문중이나 유관 기관에 통보하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를 뜻한다. 한 곳에만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수급처가 돌려 보는 문서로, 通文과는 달리 주로 鄕內에 발급되었다.
옥산서원 측은 본 회문에서 本院의 享禮가 1939년 3월 1일에 개최되니, 僉尊께서 기한 내에 참석해 주기를 간략히 요청해 놓았다. 3월 1일은 上丁日에 해당된다. 발급 담당자는 옥산서원 齋任 李 2인으로 그 아래에 각자의 署押이 기재되어 있다. 당시 재임 李 2인은 1938년 8월 옥산서원 재임으로 임명된 李貞久와 李升德으로 추정된다. 일자 다음에는 회문이 돌려진 13개 문중이 나열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板橋의 洪氏 문중, 霞上의 李氏 문중, 霞谷의 鄭氏 문중, 斗流의 權氏 문중, 玉山의 李氏 문중, 山垈의 李氏 문중, 楊月의 李氏 문중, 洪川의 權氏 문중, 六通의 黃氏 문중, 元堂의 金氏 문중, 草堤의 孫氏 문중, 沙洞의 金氏 문중, 杏村의 李氏 문중에 회문이 발급된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옥산서원에는 본 회문과 같은 내용으로 동일한 일자에 발급된 또 다른 회문이 소장되어 있다. 이 회문은 다른 11개 문중에 발급된 것이다.
자료적 가치
서원에서 진행되는 전통 향례의 계승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회문 발급은 전통적인 향례 절차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옥산서원은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향례를 치렀는데, 이러한 전통이 고수되었기에 지금까지 옥산서원 향례의 원형이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 회문이 발급된 문중은 조선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옥산서원 향례에 참여했던 가문이다. 옥산서원이 경주 지역을 대표하던 서원이었던 만큼, 옥산서원 향례에는 경주 지역의 여러 가문이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양상은 옥산서원이 경주 지역에서 가지는 사회적 위상을 짐작 할 수 있게 해준다.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