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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8월 1일 경주(慶州) 지역 16개 문중 수급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군(慶州郡) 옥산서원(玉山書院) 회문(回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F.1918.4713-20160630.Y1650108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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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고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고
작성주체 옥산서원, 두동 등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작성시기 1918
형태사항 크기: 22 X 49
판본: 고문서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안내정보

1918년 8월 1일 경주(慶州) 지역 16개 문중 수급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군(慶州郡) 옥산서원(玉山書院) 회문(回文)
1918년 8월 1일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군(慶州郡) 소재 옥산서원(玉山書院)경주 지역 16개 주요 문중에 발급한 회문(回文)이다. 회문은 문중·서원 등에서 향례(享禮)와 같은 의례를 개최하거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임시회의 소집을 위해, 같은 고을 내에 있는 다른 문중 및 유관 기관에 발급하는 문서를 뜻한다.
본 회문에는 도산서원(陶山書院)충청남도(忠淸南道) 대전군(大田郡) 향회(鄕會)로부터 통문(通文)이 발급되었음이 보고되어 있다. 통문의 내용은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현재 옥산서원에는 1918년 7월 도산서원대전군 향회에서 발급된 통문이 전한다. 해당 통문에는 이원해(李源海)의 처(妻) 평양박씨(平陽朴氏)의 열행(烈行) 추천이 언급되어 있다. 옥산서원이 경주 지역을 대표하던 서원이었기에, 본 자료와 같이 지역 내에서 여론 형성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18년 8월 1일 慶尙北道 慶州郡 소재 玉山書院陶山書院大田 鄕會의 通文을 수급했다는 내용으로 고을 내 16개 門中에 발급한 回文
자료의 내용
1918년 8월 1일 慶尙北道 慶州郡 소재 玉山書院이 고을 내 16개 문중에 발급한 回文이다. 회문은 문중이나 기관이 享禮와 같은 의례 개최나, 현안 논의를 위해 비슷한 문중·기관에 발급하는 문서를 뜻한다. 通文이 鄕外를 대상으로 한다면, 회문은 鄕內를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본 회문에서 옥산서원은 직전에 陶山書院大田 鄕會로부터 통문을 받았으니, 이 사실을 輪告함을 간략히 기재해 놓았다. 도산서원忠淸南道 大田郡 鄕會에서 발급한 통문의 내용은 본 회문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옥산서원에는 1918년 7월 20일 도산서원에서 발급한 통문과 1918년 7월 12일 대전 향회에서 발급한 통문이 소장되어 있다. 두 통문은 李源海의 妻 平陽朴氏의 烈行을 널리 알려 人倫을 바로 세우자는 내용이었다.
회문이 발급될 당시의 옥산서원 재임은 李로 표기되어 있다. 李는 1918년 8월 재임에 임명된 李起曦로 추정된다. 16개 문중은 동리명만 기재되어 있는데, 다른 회문을 통해 斗洞의 權氏 문중, 霞谷의 鄭氏 문중, 板橋의 洪氏 문중, 山臺의 李氏 문중, 楊月의 李氏 문중, 六通의 黃氏 문중, 元堂의 金氏 문중, 沙洞의 金氏 문중, 杞溪의 李氏 문중, 駕川의 徐氏 문중, 玉山의 李氏 문중, 菊洞의 權氏 문중, 有今의 蔣氏 문중과 竹洞·甲山에 발급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 회문과 같은 날에 발급된 또 다른 회문이 옥산서원이 전한다. 이 회문은 본 회문과 같은 내용으로 다른 6개 문중에 발급된 것이다.
자료적 가치
옥산서원의 사회적 위치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조선시대 이래 유림의 공론은 서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본 회문의 대상이 되는 烈婦 ??과 같은 일도 서원이 여론을 형성하고 전달하는 중심지였다. 비록 일제강점기이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유림들은 서원을 통해 열부 포장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였다. 당시 옥산서원경주군 지역의 대표적인 서원이었기에 鄕外에서 발급된 통문을 고을 내 16개 주요 문중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回文
右回諭事陶山大田兩處
通文來到故玆以輪告
照亮千萬幸甚
戊午八月一日齋任李[署押]
斗洞
霞谷
板橋
山臺
楊月
六通
元堂
沙洞
杞溪
竹洞
駕川
玉山
菊洞
良洞
有今
甲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