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9월 18일에 紹修書院 會中에서 玉山書院으로 孫李是非와 관련하여 손씨 측의 의견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온 通文
1906년 9월 18일에 紹修書院 會中에서 玉山書院으로 孫李是非와 관련하여 손씨 측의 의견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온 通文이다. 이전까지 소수서원은 손씨들을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1906년 太學과 湖南儒林 및 道內의 聲討가 계속 이어지자 결국 자신들도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 통문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는 손씨측에 答通을 보내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옥산서원의 통문에 대한 답변을 옳고 그름을 가려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즉 옥산서원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일컫는다. 소수서원측은 손씨들이 먼 곳에서 통문을 보내어 晦齋의 祭文과 大山 李象靖의 상량문으로 자신들의 안목을 현혹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은 자신들의 오착이었으며, 현재 齊會하는 자리에서 제문과 상량문을 다시 고찰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회재에 대한 退溪의 行狀을 驪州李氏들이 杜撰하였다고 誣告한 慶州孫氏들의 통문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또한 옥산서원에 답통한 것이 잘못되었으며, 자신들의 지난 실수를 떨쳐내고 새롭게 도모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자료적 가치]
영남 내의 시비들 중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 학문적 淵源과 位次의 문제로 安東의 ‘屛虎是非’, 星州의 ‘寒旅是非’ 그리고 바로 慶州의 ‘孫李是非’이다. 이들 시비는 단순히 해당 門中 간의 문제가 아니라 他地域의 문중들에까지 확대됨으로써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크게 번져갔다. 이 통문은 바로 이러한 시비에서 제삼자들의 여론이 어디로 기울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경주지역 손이시비의 전말」,『민족문화논총』42,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