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6년 춘정처막개(春貞妻莫介)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1686년 12월 19일에 죽은 춘정의 부인 막개가 조카 이씨 앞으로 여자 종을 파는 노비매매명문과 1711년 2월 16일에 언양의 손자가 변동 상황을 기록한 초사가 양면에 쓰여 있는 명문이다.
1686년 명문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의 종이 되었으나 일찍 남편의 상을 당하여 잃었고, 흉년이 매우 심하여 오래되고 널리 퍼져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힘써 나아갔으나 매번 연이어 흉년이 극심하였다. 짝하여 장심이 죽어서 초상을 지내오기를 한결 같이하자 자녀에게의 도리로는 반드시 정분이 지나치다고 꾸짖었으나 깨달지 못하였다가 이 추운 겨울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로지 몸을 따듯하게 할 의복을 일신에 구비하여 편안히 살고자 자신의 몫으로 얻은 여자종 11살짜리 자도진의 몸을 그 뒤에 낳는 자식들과 함께 영원히 갈라져서 이득을 얻으니, 이후에 수많은 자손 가운데 이 글의 내용을 쓰려면 진실로 상호 고찰하여 관에 알려서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 잡을 일이라고 했다.
명문의 뒷면에는 1711년 2월 16일 언양에 사는 손자가 사후 변동 상황을 적은 초사가 있다. 이에 따르면 36살인 여자종 자도진과 자도진이 낳은 12살의 첫째아이 남자종 담사리와 4살의 둘째아이 두사리 등 3구와 짝하여 산에 있는 행랑채를 여순업 앞으로 팔았던 적이 사실로 있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