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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6년 춘정처막개(春貞妻莫介)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E.1686.4713-20160630.Y1650109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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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노비매매명문
작성주체 춘정처막개, 이진환, 이응실, 이처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작성시기 1686
형태사항 크기: 49.6 X 45
판본: 고문서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안내정보

1686년 춘정처막개(春貞妻莫介)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1686년 12월 19일에 죽은 춘정의 부인 막개가 조카 이씨 앞으로 여자 종을 파는 노비매매명문과 1711년 2월 16일에 언양의 손자가 변동 상황을 기록한 초사가 양면에 쓰여 있는 명문이다. 1686년 명문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의 종이 되었으나 일찍 남편의 상을 당하여 잃었고, 흉년이 매우 심하여 오래되고 널리 퍼져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힘써 나아갔으나 매번 연이어 흉년이 극심하였다. 짝하여 장심이 죽어서 초상을 지내오기를 한결 같이하자 자녀에게의 도리로는 반드시 정분이 지나치다고 꾸짖었으나 깨달지 못하였다가 이 추운 겨울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로지 몸을 따듯하게 할 의복을 일신에 구비하여 편안히 살고자 자신의 몫으로 얻은 여자종 11살짜리 자도진의 몸을 그 뒤에 낳는 자식들과 함께 영원히 갈라져서 이득을 얻으니, 이후에 수많은 자손 가운데 이 글의 내용을 쓰려면 진실로 상호 고찰하여 관에 알려서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 잡을 일이라고 했다. 명문의 뒷면에는 1711년 2월 16일 언양에 사는 손자가 사후 변동 상황을 적은 초사가 있다. 이에 따르면 36살인 여자종 자도진과 자도진이 낳은 12살의 첫째아이 남자종 담사리와 4살의 둘째아이 두사리 등 3구와 짝하여 산에 있는 행랑채를 여순업 앞으로 팔았던 적이 사실로 있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686년 12월 19일에 故春貞의 妻莫介가 姪子 李處에게 여자 종을 파는 奴婢賣買明文과 1711년 2월 16일에 彦陽의 孫某가 변동 상황을 기록한 招辭가 양면에 쓰여 있는 明文
1686년 12월 19일에 故春貞의 妻莫介가 姪子 李處에게 여자 종을 파는 奴婢賣買明文과 1711년 2월 16일에 彦陽의 孫某가 변동 상황을 기록한 招辭가 양면에 쓰여 있는 明文이다. 1686년 명문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의 종이 되었으나 일찍 남편의 상을 당하여 잃었고, 흉년이 매우 심하여 오래되고 널리 퍼져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힘써 나아갔으나 매번 연이어 흉년이 극심하였다. 짝하여 長心이 죽어서 居喪을 오로지 한 즉 子女에게의 도리로는 반드시 情分이 지나치다고 꾸짖었으나 깨달지 못하였다가 이 추운 겨울에 그만두었다. 오로지 몸을 따듯하게 할 의복을 一身에 具備하여 편안히 살고자 여인의 몫으로 얻은 婢 自道進 11살 병진생의 몸을 後所生과 아울러 영원히 別得 이후에 수많은 자손 가운데 이 글의 내용을 쓰려면 진실로 상호 고찰하여 관에 알려서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 잡을 일이라고 했다. 즉 막개는 형편이 어려워 남의 종이 되었으나 곧 남편도 죽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을 키우며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식도 죽게 되자 자식의 상을 치러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에 와서야 그것을 그치고 살아가기 위하여 여종을 조카에게 인도하고 그 대가로서 겨울을 날 정도의 의복 등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명문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婢 자도진의 주인이었던 춘정의 처 막개가 조카인 李處에게 내어준 증명서이다. 명문의 뒷면에는 1711년 2월 16일 彦陽에 사는 손자가 사후 변동 상황을 적은 招辭가 있다. 이에 따르면 36살인 婢 自刀進과 자도진이 낳은 12살의 첫째아이 奴 談沙里와 4살의 둘째아이 斗沙里 등 3口와 짝하여 산에 있는 행랑채를 呂順業 앞으로 放賣적이 사실로 있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자료적 가치
명문은 토지·노비매매 등과 같이 거래를 하면서 작성한 일종의 계약서이다. 명문을 통해 구체적인 재산 축적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옥산서원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3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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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康熙貳拾伍年丙寅拾貳月十九日姪子李處明文
右明文爲臥乎事段賣身早失喪夫太
甚凶値永弘窮進往則每次月日年凶極
對長心死寧一則子女之道必是過情分
叱不喩此冬寒已一伸依服一身具備生
安女矣衿得婢自道進年十一丙辰生身乙後
所生幷永之別得爲去乎此後萬間子孫中
此文內乙用良相考告官卞正事
婢主故春貞妻莫介
證見 李進還
李應失

康熙五十年二月十六日彦陽孫背頉
婢自刀進年三十六及同婢一所生奴談沙里年十二所生奴
斗沙里年四等則三口對山留廂屋呂順業處放賣的實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