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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10년(1844) 함창에서 작성된 경로소절목(敬老所節目)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C.1884.4725-20160630.Y16322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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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절목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절목
작성주체 함창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작성시기 1884
형태사항 크기: 25 X 30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함창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함창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안내정보

헌종 10년(1844) 함창에서 작성된 경로소절목(敬老所節目)
본 자료는 헌종 10년(1844) 12월 15일 작성된 함창항교 소장 경로소절목(敬老所節目)이다. 향내 경로소를 복원하기 위해 헌종 10년(1844) 유사를 정한 뒤 각 기관에 부조액을 배당하고 통문을 발송했고, 절목을 작성하였다. 경로소 절목을 요약하면 참여자 연령은 60세 이상, 유사는 향교의 장(長) 출신, 임원은 춘추에 즐거운 시간을 계획, 회원 자제 중 과거급제한 사람은 돈을 더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조 내역은 향교 5석・강학소 10냥・임호서원(臨湖書院) 1냥・기양서원(岐陽書院) 1냥・청암서원(淸巖書院) 1냥・기산사(箕山祠) 1냥・사현재(沙峴齋)사마소(司馬所) 1냥・주암서당(周巖書堂) 1냥・신안서당(新安書堂) 1냥・무이서당(武夷書堂) 1냥 합계 19냥을 수합했다. 이후 두 차례 더 추입(追入)이 더 이루어진다. 본 자료는 친목활동으로 결성 된 것이지만 향촌 사회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졌던 경로소가 조선후기 함창지역에도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尙州市史』, 상주시, 2010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헌종 10년(1844) 함창에서 작성된 경로소절목(敬老所節目)
자료의 내용
본 자료는 헌종 10년(1844) 12월 15일 작성된 함창항교 소장 경로소절목(敬老所節目)이다. 자료의 내용은 경로소 복원 연유를 밝히는 기사(記事)와 5개 항목의 절목・참가회원・수합기(收合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함창에는 사마소(司馬所)강학소(講學所)입접소(入接所) 등은 있음에도 경로소가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설치되었다. 그러나 예전의 규정은 오래되고 향풍이 점점 무너지는 추세에 있었다. 그래서 헌종 10년(1844) 가을 향교 향례에서 경로소 복원 문제를 추진하기로 결의가 된다. 채서락(蔡瑞洛)과 류현규(柳鉉珪)를 유사로 정한 뒤 각 기관에 부조액을 배당하고 통문을 발송했는데 배당 내역은 향교 벼 5섬, 강학소 전(錢) 1냥, 각 서원과 서당 각 1냥, 사마소사현재(司峴齋)는 각 1냥씩 수합하기로 결정하였다. 경로소의 절목의 내용을 열거하면, 一. 재물을 모으는 각 곳은 지금 경로소를 개설하는 것은 실로 노인을 위하는 성대한 일이니 각자 단속해야겠다. 언어나 행동이 모나서 남과 서로 맞지 않는 경우를 없애서 영원히 잘 행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一. 경로소 참좌(參座)는 일찍이 향교의 원임(原任) 지낸 60세로서 그 일정한 기한으로 할 일. 一. 본소의 유사는 일찍이 향교의 장을 지낸 사람 중 조사원(曹司員)을 일체 세 사람을 올려서 한 사람으로 뽑는 망정(望定)과 같이 하여 근면성실하고 두려운 생각을 가져서 재물을 잘 관리하도록 할일 一. 재물을 창설하는데 지극히 조잔(凋殘)하니 해당 임원은 세찬(歲饌)을 생략하여 융통하여 그 해를 기다리되 풍족하게 되면 다만 봄에 화창하고 광명한 시절과 가을의 서늘하고 좋은 절기에 서로 지팡이를 짚고 단란하게 모여서 한자리에서 담화하여서 노경(老境)의 한 때의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 일 一. 경로소에 참좌한 사람의 자질(子姪) 가운데 임금의 은혜를 입어 등과(登科)한 사람은 마땅히 형편에 따라 더하여 보충 한일. 비교적 간단한 절목의 내용에는 경로소 참여자 연령은 60세 이상으로 하며, 유사는 향교의 장(長) 출신이어야 가능하다. 임원은 봄과 가을에 즐거운 시간을 계획해야 하고, 회원 자제 중 과거급제한 사람은 돈을 더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참석한 회원은 모두 16명으로 이씨 5명・권씨 3명・류씨 2명・신씨 2명・채씨 2명・곽씨 1명・남씨 1명이다. 부조 내역은 향교 5석・강학소 10냥・임호서원(臨湖書院) 1냥・기양서원(岐陽書院) 1냥・청암서원(淸巖書院) 1냥・기산사(箕山祠) 1냥・사현재(沙峴齋)사마소(司馬所) 1냥・주암서당(周巖書堂) 1냥・신안서당(新安書堂) 1냥・무이서당(武夷書堂) 1냥 합계 19냥을 수합했다. 강학사의 경우 배당 한 것 보다 더 수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두 차례 추입(追入)이 이루어지는데 먼저 헌종 12년(1846) 6월 7일 황씨문중(黃氏門中) 2냥・곽씨문중(郭氏門中)에서 1냥씩 부조한다. 이때 유사는 신광운(申匡運)과 신경기(申景璣)가 담당했다. 그 다음해 헌종 13년(1847) 6월 18일에도 박씨문중(朴氏門中)에서 2냥을 부조하는데 유사는 신광운과 신경운(申景運)으로 이들은 조선후기 함창지역에서 재지적 기반을 가지고 있던 평산신씨 가문의 일원이다. 이외 경로소와 관련하여 언급된 자료가 없어 그 구체적인 활동 형태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자료적 가치
본 자료는 친목활동으로 결성 된 것이지만 향촌 사회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졌던 경로소가 조선후기 함창지역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도움이 된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尙州市史』, 상주시, 2010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敬老所節目
甲辰十二月 日
敬老所記事
歲在甲辰春鄕有一員來言曰
吾鄕即嶺以下規範居最之邑
也肆有司馬講學入接之各所而
獨於敬老第節曾無設所焉大
是欠典願某樣倡施以駿吾鄕
之美事何如也哉予憮然勵意
而作曰美哉議乎夫敬老者卽事
行間長長老老之義也 是以周家有
介眉祝嘏之詩孔門有悌長安老
之訓至若香山有結社之遊洛濱
有耆英之會於我
聖朝設耆老所而限年有褒崇
之職臨歲有米肉之典是所以養老
敬老之美風盛禮者也惟吾鄕
嫂褊小嘗見稱於列邑者盖以
先父老碩德重望分條定規父啻
正重則當初豈無此敬老所所設
也前於蔡愚軒公別檢公敬老序文
盖得見知矣浸深無復者未知幾
載而前規旣弛鄕風漸壞揖遜
之節少長之分幾乎掃地窃爲慨
然者久矣而今幸聞敬老所設施
之語豈不樂副而輪議也是歲
楸鄕校 享禮時提發此論齋
中五十員咸以盛擧賀之而第以
鳩財爲難云云矣僉座合意以曾
經校原任年少員望定有司蔡
瑞洛柳鉉珪也卽發文排物本
校祖五石講所錢十兩各書院
書堂一兩司馬所沙峴齋各一兩收
合焉因以爲敬老所以倣香社洛
社之會卽爲長老一樂事而其
於鄕中長長老老之節庶有少補
爾甲辰日臘月望猥忝任蔡瑞
洛因會中謹錄
節目
一鳩財各所今乃設施實施爲
老盛擧各自規警矣相圭
角以爲永久遵行事
一敬老所參座以曾經校原任
六十歲以爲定限事
一本所有司以曾經校長中曹
司員一如望定以爲克勤惕
念以爲推便物財事
一倡設物財極甚凋殘當任員
略以歲饌輪回而待年贍饒
之後惟以春和景明秋凉佳節
扶杖團會以爲一席談話
聊做老境一樂事
一敬老參座員子侄中乃有荷
天恩登科第則當以隨力
添補事
甲辰十二月十五日會中
















收合記
鄕校 正租伍石
講學所 文拾兩
臨湖書院 壹兩
岐陽書院 壹兩
箕山祠 壹兩
沙峴齋 壹兩
司馬所 壹兩
周巖書堂 壹兩
新安書堂 壹兩
武夷書堂 壹兩
合錢合玖兩
租伍石
有司
蔡瑞洛
柳鉉珪
甲辰十二月十五日
追入
黃氏門中 二兩
郭氏門中 壹兩
申匡運
申景璣
丙午六月初七日
朴氏門中 貳兩素巖
有司
申匡運
申景運
丁未六月十八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