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백옥동서원(白玉洞書院) 소납전답(所納田畓)
기미년 10월 3일에 전씨가 작성한 백옥동서원에 전답을 바친 내역이다. 이를 보면 내북면 소선원의 畓 7두락과 검동제 아래의 畓 5두락, 필리제 아래 畓 4두락 등 모두 16두락를 옥동서원에 납입하는 전답이었다. 옥동서원은 백옥동영당에서 서원으로 승격하여 백옥동서원으로 불렸으며, 정조대에 사액되어 옥동서원이 되었다. 1714년(숙종 40) 승원 할 당시 사서 전식을 배향하였는데 본 문서의 작성자가 전씨라는 점에서 전식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또한 전식이 배향된 옥동서원이기에 전씨가 16두락의 전답을 바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을 근거로 보면 1714년부터 사액이 되는 1789년(정조 13) 사이에 본 문서가 작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己未年은 1739년(영조 15)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서원의 경제적 기반은 토지와 노비로 대표된다. 특히 초창기 경제적 기반형성에는 후손, 지방관, 문인 등의 기부와 지원이 대표적이었는데 일반적으로 후손들의 기부가 많았다. 이를 토대로 서원에서는 매매와 자연 증식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고 서원을 운영하였던 것이다. 본 문기 역시 옥동서원에 제향된 전식의 후손이 전답을 기증하여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는 실제를 보여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