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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비안향교(比安鄕校) 유계안(儒契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G.1884.4773-20150630.Y153250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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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작성시기 1884
형태사항 크기: 29.5 X 29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의성 비안향교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의성 비안향교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안내정보

갑신년 7월 18일에 처음 작성되기 시작하여 총 5회에 걸쳐 추록한 비안향교 유계안이다. 19세기 후반 비안의 유림들이 결성한 유계자료로서 유계의 계원 명단인 좌목은 갑신년 7월 18일에 9인, 동년 8월 29일에 9인, 을유년 4월 15일에 7인, 동년 10월 20일에 6인, 동년 12월 31일에 8인, 정해년 윤2월 20일에 3인이 기록되어 총 42명의 인명과 생년 간지, 자호, 본관이 기록되어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朝鮮後期 鄕校硏究』, 尹熙勉, 일조각, 1989.
『朝鮮時代嶺南書院資料集成』, 李樹健 外,, 國史編纂委員會, 1999.
1차 작성자 : 윤정식

상세정보

갑신년 7월 18일에 처음 작성되기 시작하여 총 5회에 걸쳐 추록한 비안향교 유계안으로 총 42명의 인명과 생년 간지, 자호, 본관이 기록
자료의 내용
甲申年 7월 18일에 처음 작성되기 시작하여 총 5회에 걸쳐 追錄한 比安鄕校 儒契案이다. 19세기 후반 비안의 儒林들이 결성한 儒契자료로서 유계의 계원 명단인 座目은 갑신년 7월 18일에 9인, 동년 8월 29일에 9인, 乙酉年 4월 15일에 7인, 동년 10월 20일에 6인, 동년 12월 31일에 8인, 丁亥年 閏2월 20일에 3인이 기록되어 총 42명의 인명과 생년 간지, 字號, 본관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향교의 본래의 기능은 祭禮, 敎育이었지만 후기로 가면서 교육적 기능은 점차 위축, 쇠퇴하였다. 그러나 향교는 군현의 유일한 官學으로서 지방양반들의 관심은 계속되었으며 따라서 사림세력의 향권주도와 향촌교화를 위한 결집체로서 鄕廳, 書院과 함께 중요한 향촌운영 기구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대체로 조선후기에 오면 향교는 교육적 기능보다는 제례기능을 통한 교화활동과 양반들의 모임의 장소요 公論의 소재지로써 정치, 사회적 기능이 더욱 중요시되었다.
朝廷에서는 향교를 이용하여 정책과 명분을 홍보함으로써 통치의 원활을 기하려고 하였으며, 守令들도 군현의 통치를 위해 향교를 통한 鄕所의 선발, 官政의 자문, 여론의 수렴 등을 도모하였다. 대체로 조정이나 수령은 향교를 나라의 정책을 홍보하고 관정을 보조케 하는 등 주로 수동적 역할만을 강조하였으나, 兩班儒生들은 향교를 그들의 독자적이고 다양한 정치, 사회적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에 관계되는 문제들을 그들의 집합소인 향교, 서원에서 의견을 모아 太學, 각 군현의 향교, 서원 등과 결집되어 여론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통상 유계안이 지역의 유림들이 儒風을 진작시키고 향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유학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유계를 결성하고 그에 참여한 인물들의 일면을 작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본 문서에서는 좌목 명단만이 기록되어 있어 특별히 어떠한 이유로 결성된 것임은 알 수 없지만, 당시 비안지역에서의 유림들의 공론을 결집할 만한 사건이 두드러지지 않고, 비안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여타의 자료와 다르게 시기적으로 늦은 19세기 후반의 문서로 관련있는 문서가 부족하여 보통의 유계 결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유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좌목 42명의 인적구성을 살펴보면 17, 8세기와는 현저히 다른 성관분포를 나타내는데, 金寧金氏가 4명으로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安東金·金海金·密陽朴·丹陽禹·順天張 각 3명, 延日鄭·草溪卞·陽城李 각 2명, 淸風金·淸風韓·善山金·晉州姜·大興李·比安朴·密陽孫·咸昌金·信川康·慶州孫·慶州李·宣城金·安東權·淸道金·全州李·海平吉·眞城李 각 1명 등 모두 26개 성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7, 8세기의 비안향교 주요 성관을 기록한 향안 및 교임들의 행임록, 청금록에 입록된 성관의 분포와는 다르게 다양한 성씨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사회, 경제적 변동과 신분제 와해 등이 현격하게 달라지는데서 말미암았다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이들 성씨들은 그 수에 있어서나 존속의 견고성에서도 매우 취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자료적 가치
비안향교에 현전하는 인명 관련 문서 중 비교적 상세한 내용들이 부기된 문서로 문서가 작성된 19세기 후반의 향교의 중요 인물들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17, 8세기의 비안향교 주요 성관을 기록한 향안 및 교임들의 행임록, 청금록에 입록된 성관의 분포와는 다르게 다양한 성씨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 경제적 변동과 신분제 와해 등이 현격하게 달라지는데서 말미암은 것으로 이들 성씨들은 그 수에 있어서나 존속의 견고성에서도 매우 취약한 면을 보이고 있어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양반층의 족적기반이 약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朝鮮後期 鄕校硏究』, 尹熙勉, 일조각, 1989.
『朝鮮時代嶺南書院資料集成』, 李樹健 外,, 國史編纂委員會, 1999.
1차 작성자 : 윤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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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比安鄕校
甲申七月十八日
舊案
儒契案 新案參照
座目 甲申七月十八日
鄭道欽 丙子 貫一 延日
張基錫 庚辰 聖圭 順天
金洙鎭 辛巳 泗一 淸風
禹熙穆 辛巳 敬緝 丹陽
卞彰燮 壬午 極七 草溪
張在寬 癸未 舜敦 順天
卞顯純 丙戌 周顯 草溪
金起八 丁亥 終玉 善山
朴建鎬 丁酉 斗汝 密陽
甲申八月二十九日
姜幷熙 庚辰 順泰 晉州
李運斗 癸酉 先七 大興
韓光鎬 辛巳 道明 淸州
朴炳學 庚寅 明汝 比安
孫性泰 丁亥 致安 密陽
金益相 丙戌 仲甫 咸昌
康羲燮 甲申 載輝 信川
孫炳卓 丙子 慶州
禹熙敬 甲戌 聖緝 丹陽
乙酉四月十五日
李鍾祐 乙亥 伯裕 陽城
李鍾厦 乙亥 愛居 慶州
金泰鉉 庚辰 羲五 宣城
金斗河 庚寅 明七 金海
權泰淵 戊子 安東
禹昌福 癸未 仁元 丹陽
朴能大 壬申 佑正 密陽
乙酉十月二十日
朴潤章 庚辰 士憲 密陽
金祖顯 辛巳 孟初 安東
金海鎭 乙酉 宗汝 安東
金燦周 乙酉 尙文 淸道
金起漢 丙戌 會一 安東
李明求 戊子 元大 全州
乙酉十二月三十一日
金昌宇 甲戌 應聲 金寧
吉璣錫 戊寅 衡七 海平
金聲培 乙酉 振玉 金海
金聲? 丁亥 聖攸 金寧
金達權 庚寅 允中 金寧
金顯振 庚寅 孔集 金海
金溶悳 丁酉 峻明 金寧
李鍾培 甲辰 聖達 眞城
丁亥閏二月二十日
張錫胤 甲戌 星極 順天
鄭基煥 丁亥 章彦 延日
李東淑 丙午 陽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