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년 慶尙道 聞慶縣에서 17세기 전후 작성된 좌목을 새롭게 엮어 편찬한 향안
자료의 내용
1751년 慶尙道 聞慶縣에서 만든 鄕案이다. ‘舊鄕案’이라고 불리는데, 1751년 당대의 것이 아니라 17세기 전후의 座目을 새롭게 엮은 것이다. 향안은 1751년 3월에 金日昇이 작성한 서문격의 글, 24명이 수록되어 있는 좌목, 1899년 9월 별지에 적어 자료 말미에 첨부한 李寅九의 글 순으로 엮여져 있다.
먼저 김일승이 작성한 서문격의 글에는 본 향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경위를 언급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문경현에는 완전한 향안이 없고, 대신 본 자료에서 엮은 좌목만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이전에 향안이 있었지만 어떠한 이유인지 전해지지 않고, 1751년 당시에는 단 한 편의 좌목만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좌목은 正郞 閔淑과 본인의 고조인 察訪 金里元이 修正한 것이며, 좌목의 글은 민숙의 것임을 밝혀 놓았지만, 해당 좌목의 작성 연도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紙帖의 斷爛, 즉 좌목이 끊어지고 문드러져 年月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좌목에 수록된 인물들의 세대와 참여한 시기의 원근을 살펴보았을 때, 중국 萬曆의 말기나 宣廟 임진의 후는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16세기 후반 또는 17세기 초반에 작성된 좌목이라는 것이다. 실제 글을 쓴 민숙은 좌목 두 번째로 수록된 인물로 개명 전 이름은 閔滌(1543~?)이었다. 1590년 문과에 급제한 후 정랑을 역임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17세기 전후 작성된 좌목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좌목 끝부분에 追錄된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로 추록되었고, 누가 추록하였는지 알 수 없으며, 종이도 다를뿐더러 필체도 닮지 않아 訝惑이 지금까지 전 고을에 이르고 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문경현에서 향안 입록을 둘러 싼 향촌 세력 간의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 이제 옛 좌목을 비단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본 향안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는 명철한 수령의 가르침과 여러 사람들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聞慶縣監은 1750년 2월에 부임하여 1753년 4월까지 재임한 洪?이다. 그는 향촌 교화를 위해 본 자료 이외에도 聞慶鄕校의 「靑襟錄」 편찬을 지시한 인물로, 그 경위는 당시 문경향교에서 편찬한 「청금록」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좌목은 1751년에 새롭게 작성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민숙이 썼던 좌목을 단장한 것이다. 모두 24명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름과 관직만 기재되어 있다. 수록된 인물을 성씨별로 분류하면 申氏 6명, 李氏 4명, 權氏 3명, 南氏 3명, 金氏 2명, 閔氏 2명, 沈氏 1명, 安氏 1명, 尹氏 1명, 鄭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문경향교에는 본 자료를 비롯하여 조선후기 문경향교의 인적 구성을 알 수 있는 「청금록」, 「任員錄」 등이 전하고 있는데, 이들 자료에 수록된 성씨도 본 향안과 마찬가지로 申氏, 李氏, 金氏, 閔氏 등의 비중이 높다. 한편, 입록자의 관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관직이 표기된 자는 9명으로 牧使 1명, 正郞 1명, 察訪 1명을 비롯해 僉知 2명, 知事 1명, 僉正 1명, 判事 1명, 奉事 1명이 있다. 관직 이외 幼學으로 표기된 자와 병종인 忠義衛로 표기된 자가 각각 6명이며, 유향소의 首任인 座首로 표기된 자는 3명이다.
자료 말미에는 한참 후대인 1899년 이인구가 작성한 글이 첨부되어 있다. 이 글은 별지에 작성한 것으로 문경향교에 본 향안이 보관된 경위를 간략히 언급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향안 수정이 이루어졌으며, 그 향안을 수백 년 동안 鄕憲堂에 보관해 왔지만, 지난 甲午年, 즉 1894년에 鄕堂이 훼철되어 문경향교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옮겨진 향안은 문경향교의 다른 藏書들과 机 속에 보관되었었다. 그러나 향안이 다른 장서와 어지러이 섞여 있는 것이 민망하여, 一鄕의 유림들의 의논해 별도의 향안을 보관하는 木机를 만들었고, 그 목궤를 明倫堂 東梁 위에 두게 되었다고 한다.
자료적 가치
17세기 전후 경상도 문경현 지역의 향촌사회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17세기 전후 재지사족들은 향안 입록을 통해 향촌지배권을 강화해 나갔다. 본 향안에서 확인되는 인물들의 姓貫은 平山申氏, 順天金氏, 驪興閔氏 등으로 이들 가문은 16세기 이래 문경현을 대표하는 재지사족 가문이었던 것이다. 한편, 좌목에 나타난 입록자의 관직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幼學이 입록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17세기 중반 이후의 일반적인 향안과 비교된다. 다양한 관력을 가진 인물의 향안 수록은 재지사족들의 향촌지배권이 강화되고 향안의 권위가 강했던 17세기 전후의 향촌사회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聞慶郡誌增補版』, 任炳燮, 新興出版社, 198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朝鮮時代 鄕約硏究」, 申正熙,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