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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록이정(甲辰錄釐正)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G.1727.4725-20150630.Y153211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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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향안
작성주체 상주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727
형태사항 크기: 34 X 48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상주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상주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안내정보

갑진록이정(甲辰錄釐正)
『갑진록이정(甲辰錄釐正)』은 정미년(丁未年), 즉 1727년 12월에 작성된 상주(尙州) 향안(鄕案)의 일부분으로 총 21명이 입록되어 있다. 향안이란 조선시대 지방자치 행정기구인 유향소(留鄕所)의 구성원 명부를 말하는 것으로 향안입록은 곧 그 지역의 지배세력임을 인정받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향안 입록은 지역의 유력사족에 한정되었다. 본 자료에 입록된 21명 역시 상주의 유력사족이라 할 수 있다. 상주에서는 비교적 이른시기에 향안의 작성이 이루어졌으며 『상산향언록(商山鄕彦錄)』이라는 명칭으로 현전하고 있다. 『갑진록이정』은 갑진년(甲辰年), 즉 1724년에 작성된 향안을 1727년에 다시 옮겨 적은 것이다. 그리고 『갑진록이정』에 입록된 인사들은 『상산향언록』의 丁未十二月日錄(1727년)이 작성될 당시 모두 함께 입록되었다. 원인은 불명확 하지만, 실제 1724년에는 『상산향언록』의 작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1727년에 입록이 이루어졌는데 이때에 『갑진록이정』에 입록된 인원이 모두 포함되어 작성되었다. 즉 1727년 『상산향언록』의 작성 당시 『갑진록이정』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甲辰錄釐正』과 『상산향언록』에서는 당시 상주의 복잡한 향안 작성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 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民音社, 1990
1차 작성자 : 유기선

상세정보

1727년 상주목에서 작성된 향안의 일부
내용 및 특징
본 자료는 丁未 12月에 작성된 『甲辰錄釐正』이다. 상주에서 작성된 鄕案의 일부분으로 상단에 입록자의 職役을 기재하고 직역 밑에 姓名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幼學 趙元經을 포함한 8명을 기록한 후 ‘丁未十二月甲辰錄釐正’이라는 명칭 아래 다시 牧使 趙榮祿을 포함한 13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총 입록인원수는 21명이며 이들을 성씨별로 분류하면, 姜氏 9명, 趙氏 6명, 李氏 2명, 洪氏 2명, 金氏 1명, 吳氏 1명의 입록이 확인된다.
문서의 작성연대는 입록인의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입록인 가운데 牧使 趙榮祿1726년(영조 2) 尙州牧使로 부임하였다. 따라서 여기서의 갑진년1724년이며 정미년1727년이다.
주지하듯 향안은 조선시대 지방자치 행정기구인 留鄕所 또는 鄕廳의 구성원 명부를 말한다. 조선중기 이후 지방의 在地士族들은 유향소를 매개로 향촌운영에 관여하였으며 향안의 입록을 통해 鄕權을 확보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신분적 우위를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즉 향안의 입록은 명문사족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본 자료 또한 향안의 일부분으로 여기에 입록된 21명은 당시 상주의 사족이라 할 수 있다.
문서명에서와 같이 본 자료는 甲辰錄을 釐正한 것이며 여기서의 갑진록은 尙州의 鄕案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 본 자료에 입록되어 있는 21명은 현전하고 있는 상주의 향안인 『商山鄕彦錄』에도 모두 입록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단, 『상산향언록』의 경우 갑진년에는 작성된 바가 없으며 본 자료의 입록인은 모두 丁未十二月日錄에 입록되어 있다. 이러한 『상산향언록』과 본 자료와의 관계를 보았을 때, 최초 갑진년(1724)에 ‘갑진록’이라는 명칭으로 향안이 작성이 되었으나 『상산향언록』에는 기록되지 못하였다. 당시 ‘갑진록’이 『상산향언록』에 곧바로 수록되지 못한 연유는 불명확하다. 이후 정미년(1727)에 갑진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본 자료인 『甲辰錄釐正』이 작성되었고 이곳에 입록된 인원은 『상산향언록』의 丁未十二月日錄이 작성될 당시 모두 함께 입록되었다.
자료적 가치
『甲辰錄釐正』은 당시 향안 작성의 복잡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본 자료에는 향원의 명단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기에 당시 향안 작성의 정황을 정확히 살펴볼 수는 없는 자료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당시 향안의 작성 과정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 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民音社, 1990
1차 작성자 : 유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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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仙 幼學 趙元經
趙復經
洪世錫
趙允重
李元蓍
金夢興
趙允復
姜槿
丁未十二月甲辰錄釐正
牧使 趙永祿
通德郞 姜{木+厚}
參奉 姜楷
縣監 姜必慎
校理 姜必慶
縣監 姜樸
進士 姜栒
進士 姜碩年
通德郞 姜㰒
郡守 趙世垕
幼學 洪璄
吳尙遠
生員 仙 李如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