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6년 2월 경상도 함창현 함창향교의 교생 명단인 교안
자료의 내용
본 자료는 1676년 2월 경상도 함창현 함창향교의 교생 명단인 교안이다. 조선시대 향교가 위치했던 함창현은 현재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으로 편입되어 있다.
함창향교에 현전하는 교안은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총 8책으로 교생의 신분에 따라 액내교생과 액외교생으로 구분하여 작성되어 있다. 본 자료는 함창에서 현전하는 교안 중 가장 앞선 시기의 것으로 액내와 액외 구분하여 작성된 교안이며, 東齋 유생만을 별도로 수록한 靑衿錄과 병행해서 작성 되든 시기의 교안이다.
자료의 표제에 ‘校案’ 및 ‘西齋▣▣講案’ 명기 되어 있고 좌목 구성은 이름 외 다른 기록은 전무하다.
교안 수록자는 총53명이며, 액내교생 41명과 액외교생 12명이 각기 신분을 구분하여 수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 교생은 군역면제를 비롯한 각종 특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경국대전에 향교의 정원이 규정되어 있는데, 縣 소재 향교 정원은 30명이다. 그러나 함창향교 액내교생은 41명으로 법적정원에서 11명을 초과하는 모습 이지만 편차가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다.
교안 입록자를 성씨별로 분류하면 먼저 양반들로만 구성된 액내교생은 남씨 1명, 채씨 7명, 권씨 5명, 최씨 2명, 申氏 5명, 박씨 2명, 이씨 11명, 鄭氏 3명, 손씨 1명, 洪氏 2명, 김씨 1명, 全氏 1명 순으로 등재되어 있다.
액내교생이 재지사족들로 구성되고 있었음은 조선시대 고을의 유력한 양반들의 자치기구인 유향소의 구성원 명부인 鄕案과 청금록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함창향안에는 액내유생 절반이 훨씬 넘는 27명이 청금록에는 1명이 중복 입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치는 당시 교안도 향안과 청금록이 양반사족의 명부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중복 입록자들을 성씨별로 정리하면 향안에는 이씨 8명, 채씨 5명, 신씨 4명, 박씨·권씨·홍씨 각2명, 남씨·전씨·정씨·최씨 각1명씩이다.
이들의 본관은 完山李氏, 仁川蔡氏, 平山申氏, 安東權氏, 南陽洪氏 등으로 조선중기 이래 유향소를 중심으로 함창의 향촌사회를 주도하던 대체적인 가문들로 볼 수 있다. 또한 최씨와 전씨를 제외하면 함창현 읍지류 성씨조에 수록된 來性들이다.
다음 향교에 재물을 바치는 대가로 피역하는 부류인 비 양반층들 명단인 액외교생에는 申氏 5명, 이씨 2명, 권씨 1명, 秦氏 1명, 홍씨 1명, 김씨 1명, 趙氏 1명, 南氏 1명, 印氏 1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중 향안이나 청금록에 중복 입록된 자는 1명도 없다.
향안 말미에는 ‘丙辰二月日’ 간지와 당시 향임인 上齋 李·掌議 李·有司 蔡 및 ‘行縣監 李’라는 기록으로 끝이 난다.
자료적 가치
본 자료는 17세기 후반 함창향교의 인적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인조 대 이후 교생고강이 실시된 이후에도 함창지역 일부 양반사족들은 교안과 청금록을 병행해서 작성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교안에서 청금록으로 이행되던 과도기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함창향교의 교안에 액내교생이 향안이나 청금록에 동시에 등재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향안과 교안의 운영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운영되었음을 의미하며 교안이 향안과 같이 양반사족의 명부임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韓國의 鄕校硏究 』, 강대민, 경성대학교출판부, 1992
『尙州誌』, 상주시, 1989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