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에 작성된 경상도 함창현(咸昌縣) 향안(鄕案)
자료의 내용
1607년에 작성된 경상도 咸昌縣 鄕案으로 함창향교에 소장되어 온 자료이다. 함창향교에는 모두 7종의 향안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향안들은 다소 중복되거나 연대가 비슷한 것이 있으나 舊案·加錄·座目·繼錄 등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본 자료의 명칭은 鄕案으로 현전하는 가장 오랜 된 함창의 향안이다.
조선후기 임진왜란을 거치면 소실 된 향안들은 17세기에 집중적으로 복구가 이루어지는데 시기적으로 지역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대체로 17세기 중엽까지 향안 입록은 재지사족들의 공론에 의해 추진되는 추세였다. 본 향안도 공론에 의해 임진왜란 후인 1611년 복구 된 함창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향안으로 초기 향원 현황 및 재지사족의 동향과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본 향안은 1607년 51명과 1611년 11명 2회에 걸쳐 62명이 입록되었으며 좌목 구성은 본관, 字號, 생년간지 등에 관한 사항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성명과 관직 또는 관품만을 기재해 두고 있다.
첫 번째 좌목은 1607년 6월의 것으로 입록자 51명의 성씨를 살펴보면, 권씨 7명, 이씨 6명, 申·채씨 각5명, 곽·柳·정씨 각4명, 趙·曹씨 각3명, 김·박·윤·홍씨 2명, 강·남씨 각1명 순으로 총 15개 성씨가 나타난다. 이중 35명 이름 아래 관직과 직역이 명기되어 있는데 나열하면 幼學 13명, 忠義 7명, 縣監 3명, 訓導 2명, 郡守·別提·司果·點爲·正字·察訪·參奉·僉正·僉知·學正 각1명씩 이다.
두 번째 좌목은 1611년의 것으로 입록자 11명의 성씨를 살펴보면, 申氏 3명, 趙·채씨 2명, 강·권·박·이씨 각1명씩 순으로 총 7개 성씨가 나타난다. 이중 7명 이름 아래 관직과 직역이 기재되어 있는데 幼學 4명, 忠義 3명씩 이다.
이상 향안에 수록된 상위 성씨들의 본관은 平山申氏, 安東權氏, 仁川蔡氏, 完山李氏, 漢陽趙氏, 延日鄭氏 등으로 본관은 조선중기 이래 유향소를 중심으로 함창의 향촌사회를 주도하던 대체적인 가문들 볼 수 있다. 모두 邑誌類에 기재되어 있는 함창의 土姓이 아닌 來性들이며, 관직 보유자 비중이 후대 작성되는 타 향안과 비교하면 그 비율이 훨씬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좌목 다음 수록된 立議는 향청에서 제정한 鄕案 관련 규정으로 16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16개조의 내용을 간략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一 향인 25세로 諸會에서 可否를 물어 否가 다섯 이상이 아닌 경우 허락할 것
一 鄕所 3명은 매 朔望에 모여 향사당의 풍속을 紏正할 것
一 향사당에 모일 때 좌목 품관에게 명함을 내놓고 면회를 청한 후 들어올 것
一 향원이 손해를 입힌 사람과 서로 정기 모임 때 飮者는 門罰 할 것
一 향원으로 있으며 풍속을 손해를 주고 어지럽힌 자는 輕重에 따라 벌로 다스리고 지나더라도 종신토록 不貸할 것
一 향임은 1년간 相遞 할 것
一 향회 때 이유 없이 참석 또는 모이지 않거나 핑계를 삼는 자는 벌로 다스릴 것
一 官等의 임무는 서얼로 차정할 것
一 곡식을 운반하는 관청의 말은 營官의 閑敬으로 차정할 것
一 削還 손해를 입힌자는 그 경중에 따라 힘써 監官으로 차정할 것
一 손해를 입힌자가 중지함을 그치지 않고 곁에서 仙執하는 자는 한 등급의 죄를 더 줄 것.
一 향원으로 罰을 논함에 동참한 후에 도리어 그 사람에게 아첨하며 陰䧟를 퍼뜨리는 자는 이름을 빼고 돌려주지 말 것
一 향내 公廳에서 항시 소리 높여 불손한 사람은 먼저 조용히 있다가 후에 벌을 줄 것
一 별감을 깔보며 업신여기고 좌수를 예절에 맞게 한 자는 영영 削하고 할 것
一 전곡으로 보충한 양반의 것은 나누지 말고 합하고, 약속을 어긴 食者와 處諸는 損徒 할 것
一 고을에 無時로 公廳에 있지 않으면서 抗聲하며 불손한 자는 먼저 잠잠하게 하고 후에 벌 할 것
一 앞서 좌수한 자는 雜任과 都監일에 차정하지 말 것
향안 말미에는 萬曆三十五年丁未六月日가 기록되어 있고, 향안 작성 당시 향임인 座首와 別監의 성명과 그들의 署押이 기재되어 있다. 座首는 柳薰 1명, 別監은 趙克新·鄭彦寯 2명으로 나타난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함창지역에서 가장 일찍 만들어진 본 향안은 조선후기 향안 운영의 실태와
사족들의 인적구성, 성씨분포 및 향안 입록 규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본 향안은 전란으로 신분제가 동요되고 피폐해진 향촌사회 복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 이를 통해 사족 중심의 향촌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본 향안에 수록된 인물들은 당시 함창 지역 향론을 주도했던 유력한 사족 가문 출신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향안 내 비중이 높은 가문들은 모두 來性들로 17세기 이전 혼인과 卜居 등을 통해 이주한 가문들의 族勢가 강했음을 보여준다. 이들 기존 재지사족들은 가급적 향안을 배타적으로 운영해 나감과 동시에, 향안의 立議 즉 제 규정을 통해 吏胥層을 비롯한 하층민을 통제하는 제 규정들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조선후기 향촌사회 권력구조 변동에 대한 시론』, 김인걸,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8
『尙州誌』, 상주시, 1989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