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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고령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형태사항 크기: 36 X 23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고령 고령향교 / 경상북도 고령군 연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고령 고령향교 / 경상북도 고령군 연조리

안내정보

유안(儒案)
고령향교(高靈鄕校)의 『노유안』(老儒案)은 조선시대 고령향교를 출입하던 유생(儒生) 가운데 원로(元老)들을 따로이 기록한 일종의 명부로 노유 40명, 입격자 12명이 입록되어 있다. 계축년(癸丑年) 2월 작성된 것으로 정확한 연대추정은 어렵지만 18세기 이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입록인의 상당수는 앞서 작성된 갑진년(甲辰年), 정미년(丁未年)의 『노유안』에도 중복 입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출입하던 생도(生徒)의 명부는 그들의 신분에 따라 구분되어 작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양반사족들은 그들 스스로 유생(儒生) 또는 청금유생(靑衿儒生)이 칭하며 유안(儒案) 또는 청금록(靑衿錄)이라는 그들만의 명부를 따로이 작성하였으며 이외의 일반 평민 또는 서얼층은 교생(校生)이 불리며 그들의 명부는 교안(校案)이라 하였다. 『노유안』은 원로 유생을 기록한 것으로 즉, 양반사족들의 명부라 할 수 있다. 입격은 일반적으로 소과(小科)에 합격한 자를 이르는 말로 이들의 구체적인 신상은 확인할 수 없지만 노유들과 함께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고령의 사족층이라 생각된다. 『노유안』은 조선시대 고령향교의 인적구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이며 또다른 사족의 명부인 『고령향안(高靈鄕案)』과의 비교를 통해 고령사족의 동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유기선

상세정보

계축년(癸丑年)에 작성된 고령향교의 노유(老儒) 명단
내용 및 특징
본 자료는 癸丑年 2月에 작성된 高靈鄕校의 『老儒案』이다. 문서명에서와 같이 老儒의 명단으로, 당시 고령향교를 출입하던 儒生 가운데 元老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老儒뿐만 아니라 入格者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작성날짜를 기재한 후 老儒, 入格을 구분하여 그 명단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그리고 끝에는 縣監의 手決이 있다.
고령향교에는 이러한 『노유안』이 총 3건 현전하고있으며 본 자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작성연대의 경우 癸丑 二月이라는 干支 만이 기록되어 있기에 정확한 연대추정은 불가능하다. 다만 입록인의 일부가 『司馬榜目』에서 합격자의 친족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에 따라 18세기 이후 작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축년의 『노유안』은 노유와 입격자의 명단이 함께 작성되어 있다. 먼저 노유의 입록현황을 살펴보면 총 40명이 입록되어 있다. 이들을 성씨별로 구분하면 金氏 6명, 崔氏 5명, 權氏 5명, 李氏 4명, 宋氏 4명, 鄭氏 3명, 朴氏 3명, 全氏 2명, 柳氏 1명, 申氏 1명, 吳氏 1명, 潘氏 1명, 許氏 1명, 裵氏 1명이 입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노유들은 본 자료에서만 입록된 것이 아니며 앞서 작성된 甲辰年丁未年의 『노유안』에도 중복으로 입록된 경우가 많다. 『노유안』3건의 입록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중복된 경우를 제외한 총 입록인의 수는 55명이다. 이 가운데 崔鳳擧를 비롯한 14명은 3건의 명단에 모두 등재되었으며, 許佶을 포함한 7명은 2회, 나머지 34인은 1회 입록되고 있다.
일반적인 향교 연구에 따르면, 조선후기 중서층을 비롯한 무자격자의 향교진출이 광범위해지고 이들에 대한 통제책인 校生考講이 양반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되자 종래의 양반사족들은 考講을 회피함과 동시에 향교에서의 신분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만의 명부인 儒案, 또는 靑衿錄을 작성하였으며 그들 스스로 儒生, 혹은 靑衿儒生으로 불렀다. 즉 유안·청금록 등은 양반사족의 案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령의 경우도 위와 마찬가지로 양반사족들은 그들만의 명부인 유안을 작성하였으며 유안 입록인 가운데 원로 유생의 案을 따로이 작성하였다. 『노유안』이 그것으로 이는 곧 고령지역 양반사족의 명부인 것이다.
실제 『노유안』이 양반사족의 명부였음은 향안입록인의 성씨분포와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 자료를 포함한 『노유안』3건의 입록인 전체의 성씨별 입록현황을 살펴보면 金氏 8명, 李氏 6명, 宋氏 6명, 崔氏 5명, 權氏 5명, 朴氏 4명, 全氏 3명, 鄭氏 3명, 申氏 3명, 柳氏 3명, 魯氏 2명, 許氏 2명, 呂氏 1명, 吳氏 1명, 潘氏 1명, 裵氏 1명, 이외 未詳 1명으로 총 55명의 입록이 확인된다. 본 자료를 포함한 『노유안』입록인의 성씨 구성은 17세기초부터 1769년까지 작성된 『高靈鄕案』의 성씨분포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3건의 『노유안』에 입록되고 있는 성씨는 향안의 성씨범위와 대체로 동일하며 校籍에서의 우위를 보이는 金·崔·權氏 등은 향안의 입록에도 우위를 보이는 성씨들이다. 이는 곧 고령향교를 출입하던 儒生이 고령의 유력사족층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유안』에서는 위와 같은 원로 유생의 명단에 뒤이어 入格人이 기록되어 있다. 총 12명의 입록이 확인되며 탈락으로 인해 1명의 이름은 확인할 수 없다. 성씨별로는 李氏 6명, 崔氏 2명, 鄭氏 1명, 朴氏 1명, 金氏 1명, 未詳 1명이 입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入格은 小科 합격자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 입록된 인물들의 본관, 주소, 시험의 종류 등의 구체적인 신상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老儒의 명단과 함께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들 역시 고령의 사족이었다고 생각된다.
자료적 가치
현재 고령향교에는 『노유안』을 비롯하여 『高靈鄕案』, 각종 契案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 고령향교의 가장 직접적인 인적구성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본 자료가 유일하다. 이들 통해 고령향교의 인적구성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으며 鄕案 등의 다른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고령지역 유력사족의 동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유기선

이미지

원문 텍스트

癸丑二月日高靈儒案
老儒
鄭景玄
崔鳳擧
崔鳳輝
李廷蓍
金柱廈
全性之
鄭景桓
崔嵩望
吳善基
李華
金漢斗
全克履
李起■
朴尙彬
金慶選
宋應奎
朴漢翼
金慶址
金自殷
宋再亨
權克慶
宋再文
權克中
裵景緯
崔熙
全德■
宋浚張
許佶
李翊邦
潘孝達
■俊玭
權審一
權克衡
申應休
宋弟休
權鳳來
權就一
魯道明
鄭應周
朴文煥
入格
李惟馨
李惟直
李惟長
鄭潽
李翊世
李燁
崔衡望
朴允文
崔泰望
李榮宙
金英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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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縣監 [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