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세기 함창향교(咸昌鄕校) 교안(校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G.0000.4725-20150630.Y153220100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함창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형태사항 크기: 33 X 20.5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함창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함창향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안내정보

18세기 함창향교(咸昌鄕校) 교안(校案)
본 자료는 18세기 병진년에 작성된 함창향교(禮安鄕校)에 출입하였던 서재 교생 명부인 교생안(校生案)이다. 본 교생안을 통해 당시 함창향교에 입학하였던 서재교생의 정원과 교생들에 대한 간단한 인적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현전하는 함창항교 교안 중 마지막으로 작성된 것으로 액내와 액외교생 구분 없으며 모두 30명을 입록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현(縣) 소재 향교의 법적 정원 30명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본 교안 수록 된 교생들을 성씨별로 분류하면 김씨 9명, 全氏 4명, 이·한씨 3명, 권·趙氏 2명, 고·안·우·윤·林·張·허씨 각 1명 순으로 등재되어 있다. 기존 교안에서 상당부분 비율을 차지한 신씨, 채씨, 홍씨 등은 보이지 않고 전씨, 한씨, 고씨, 우씨, 임씨 등 새로운 성씨가 등장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이 시기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함창향교에서도 별개의 교생 명부 즉 비 양반 명부인 西齋 校生案을 따로 작성하여 운용하였음을 본 교생안을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韓國의 鄕校硏究 』, 강대민, 경성대학교출판부, 1992
『尙州誌』, 상주시, 1989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세기경상도 함창현 함창향교의 교생 명단인 교안
자료의 내용
18세기 병진년 함창향교(禮安鄕校)서재교생 명부인 교생안(校生案)이다. 조선시대 향교가 위치했던 함창현은 현재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으로 편입되어 있다. 함창향교에 현전하는 교안은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총 8책으로 교생의 신분에 따라 액내교생과 액외교생으로 구분하여 작성되어 있다. 하지만 본 자료는 여타의 교안과는 달리 액내교생과 1회 加錄하여 작성된 것으로 함창에서 현전하는 교안 중 마지막이다. 자료의 표제는 ‘校生案’ 이며 좌목 구성은 이름과 移居 사실을 수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 교생은 군역면제를 비롯한 각종 특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경국대전에 향교의 정원이 규정되어 있고, 縣 소재 향교 정원은 30명이다. 본 교안 수록자는 총 30명으로 법적 정원을 정확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입록자들 대개의 교안이 그러하듯 나이순으로 성명을 기재한 것으로 보이며 이거자 1명은 옆 고을 상주로 이거하였다. 30명의 교생안의 입록자를 성씨별로 분류하면 김씨 9명, 全氏 4명, 이·한씨 3명, 권·趙氏 2명, 고·안·우·윤·林·張·허씨 각 1명 순으로 등재되어 있다. 기존 교안에서 상당부분 비율을 차지한 신씨, 채씨, 홍씨 등이 나타나지 않는 반면 전씨, 한씨, 고씨, 우씨, 임씨 등의 새로운 성씨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인조 대 교생고강 실시 이후 기존 사족들의 향교에 대한 기피 현상으로 이주한 사족, 新鄕, 서얼계층들의 향교 활동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그들과의 차별을 기하기 위해 儒案·靑衿錄 등의 별도의 명부를 만들었다. 함창향교에서도 기존 양반 명부인 靑衿錄과 비 양반 명부인 西齋 校生案을 따로 작성하여 운용했는데 본 자료는 후자인 서재교생의 명단이다. 그래서 기존 성씨들은 보이지 않는 반면 새로운 성씨의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아울러 조선시대 고을의 유력한 양반 자치기구인 유향소 명부인 향안에 등재 된 사람이 한명도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끝으로 이거한 자를 대체하여 가록한 1명의 이름과 ‘丙辰十月初一日’ 간지 및 당시 향임인 都有司申, 掌議蔡, 有司申 명단이 적혀있다. 교생안의 맨 마지막에는 수령의 手決로 마무리 된다.
자료적 가치
18세기 병진년 함창향교에서 작성한 西齋 校生案으로 당시 서재교생의 입록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함창향교에서도 별개의 교생 명부를 만들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본 교생안을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향교 서재교생은 軍役을 대신하여 건물의 유지와 보수, 校任의 보좌와 같은 役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役은 당연히 비양반층 계층의 사람의 부담이며 본 자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성씨의 사람들이 바로 역을 부담하는 사람들임을 알게 해준다.
『慶北鄕校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1
『朝鮮後期 鄕校 硏究』, 윤희면, 일조각, 1991
『咸昌鄕校誌』, 함창향교, 2010
『韓國의 鄕校硏究 』, 강대민, 경성대학교출판부, 1992
『尙州誌』, 상주시, 1989
1차 작성자 : 채광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校生案
全必瑞
趙碩佐
金貴益
金碩夢
金尙大
金重昌
全必興
權文郁
安有三
金重輝
全守宇
【反武】 尹大哭
金泰伯
【尙州移居】 許景
金貴泰
權東郁
張漢文
韓龍彬
李必萬
趙碩赴
韓龍三
韓貴三
李順札
李億珍
禹漢徵
全兌命
林昌根
高世貴
金貴三
金鳳泰

加錄
黃龜頭
丙辰十月初一日都有司申
掌議蔡
有司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