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기(笏記)
이 자료는 상주향교(尙州鄕校)에서 작성한 『笏記(홀기)』이다. 홀기란 제례을 거행하는 순서를 기록한 것이다. 제례는 엄격한 질서가 필요로 하는 의식이기에 그만큼 제례거행 과정에서의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전준비와 과정을 기록할 필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발달한 것이 것이 홀기이다. 홀기는 절차를 미리 의정해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절차의 오류를 막고 시비의 근원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홀기』는 당시 상주향교에서 거행된 석전(釋奠), 성묘이환안고유제(聖廟移還安告由祭), 심생례(審牲禮)의 절차 및 제관(祭官)의 역할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석전은 음력 2월과 8월의 첫 정일(丁日, 上丁日)에 문묘(文廟)에 모셔진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현(先賢)에게 올리는 제사로 가장 큰 향교의 제례였다. 홀기에 나타난 석전의 순서는 크게 전폐례(奠幣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수조례(飮福受胙禮), 망요례(望瘞禮)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성균관에서 거행된 석전제와 대체로 유사하다. 성묘이환안고유제는 어떠한 사정으로 신위(神位)를 옮겨야 할 때에 그 연유를 고하는 것으로 크게 작헌례(爵獻禮)와 망예례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심생례는 제사에 쓰이는 제물(犧牲)을 검수하는 예이다. 상주향교의 홀기는 이와 같이 거행된 제례의 순서와 제관의 절차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제례 과정에서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홀기』가 작성된 것은 향교의 의례기능과 관련이 깊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유학의 상징이었고 지방민들에게는 유교이념을 보급하는 교화(敎化)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향교에서의 제례는 대단히 엄정히 거행되었으며 『홀기』의 작성을 통해 제례 중의 실수를 방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홀기』는 당시 상주향교에서 거행된 제례의 구체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제례의 엄정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유기선